비가 내린다. 길에 비를 맞고 우는 유치원생이 보인다. '어디가 아픈가. 부모에게 투정 부리는 모습이라고 할까.' 의문을 품으며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아파트에서 아이의 아빠가 내려와 데리고 간다. 우는 모습도 귀여운 유치원생을 보며 슈베르트 가곡 '마왕'이 생각난다.
'마왕'에 등장하는 아픈 아이의 말이 떠오른다. "아빠! 마왕이 말을 걸고 나를 만져요. 아빠는 보이지 않으세요?" 아버지는 자식을 살리려고, 빠르게 말에서 떨어지지 않게 꽉 잡고 달렸으리라.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이어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진다"라고 하지 않는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아버지의 참사랑을 그린 가곡으로 습습하다.
'마왕'은 요한 볼프강 괴테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됐다. 여러 작곡자가 같은 시를 가곡으로 만들었는데, 프란츠 슈베르트가 만든 곡이 가장 유명하다. 베토벤 역시 괴테의 영향을 받아 '마왕'을 미완성으로 남겼다. 베토벤 '마왕'은 20세기 독일 '라인 홀드 베커'라는 음악학자에 의해 복원됐다. 미완성곡이지만 베토벤이 쓴 작품이므로 가치가 있다고 돌려본다.
어린 영혼을 빼앗는 슈베르트 '마왕'을 펼쳐본다. 어느 깊은 밤 아버지가 말발굽 소리를 내며 무섭게 달리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바람을 막기 위해 어린 아들의 얼굴을 가리며 빠르게 달린다. '마왕'의 모습을 본 어린 아들은 겁에 질려 있다. 목숨을 빼앗으려는 마왕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섬뜩한 시가 예술가곡으로 만들어졌다. 이 곡은 1815년경에 작곡된 가곡이다. 슈베르트가 18세 되던 해 12월 어느 날 오후 괴테의 시를 읽고 갑자기 곡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짧고 격렬한 곡을 썼다. 완성 후에 여러 번 수정해 1821년에 발표됐다. 그 해, 3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게르 토너 토비' 극장에서 초연됐다.
그는 첫 공연을 선보이며 성공을 거두었다. 많은 가곡 작품 중 '마왕'이 주목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여기에 해프닝이 있어 소개해 본다. 슈베르트는 주목받은 이 곡을 괴테에게 악보를 보내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러나 괴테에게 무시당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출판하기 위해 악보를 보냈다. 그러나 곡이 너무 괴상하다며, 출판을 못 하겠다고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왕'의 악곡을 살펴본다. 4분의 4박자, 사단조 곡으로 변형된 론도 형식이다. 1명의 가수가 4명의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곡이다. 교활한 '마왕'의 목소리는 나란한조 내림 나장조, 말을 탄 초조한 아버지, 두려움에 떠는 병약한 아들, 전체 이야기를 설명하는 해설자가 종결부로 구성돼 매우 특별하고 인상적이다. 다장조 다단조로 서서히 음이 올라가며 아이의 목소리는 라단조로 구성된다. 이야기와 영역에 맞게 조를 바꾸어 가며 진행된다. 성악가와 반주자가 연주하는데, 힘든 곡으로 담아본다.
그는 성악가가 부르는 가곡의 가락으로는 시의 정서를 표현하기 힘들다며, 피아노 반주를 시의 느낌에 따라 화음과 선율로 그렸다. 처음 시작부터 피아노 반주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표현했다. 필자도 이 부분이 마왕 하면 떠 오른다. 같은 음의 연타가 말이 달리는 모습의 느낌이다. 피아노를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말발굽 소리가 달라진다고 하리라. 필자의 머릿속에서도 말이 달리고 있다고 하련다. 마지막 부분 역시 비극적인 피아노 화음으로 매우 세게 치며 끝이 난다. 이처럼 피아노가 반주의 영역을 넘어 곡의 이미지를 완성한다고 감히 말하련다. 음악을 듣고, 괴테의 시를 읽으며 어린 자식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사랑이 크게 느껴진다.
많은 작품을 남긴 슈베르트를 소개한다.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를 '천상의 방랑자' '순결한 천년의 영혼'으로 부른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별명이 있다. '슈밤메를'이다. '슈밤메를'은 작은 버섯이라는 뜻으로 풀이 된다. 작은 키에 배불뚝이인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는 음악의 천재도 예술가도 아니었다. 음악을 좋아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잠깐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그가 후세까지 음악가로 불림은 친구들의 덕분이었다. 친구들이 '슈베르티아데'라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 그가 작곡한 곡을 연주하고 듣는 모임을 자주 가졌다. 그곳은 시, 문학, 미술 이야기까지 나누는 예술의 장이 되며, 삶의 빛을 담소로 나누는 공연장이 됐다.
그의 작품은 짧은 일생에 '들장미', '마왕',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등 630여 곡의 가곡과 실내악이 있다. '백조의 노래'는 그가 31세의 아까운 나이로 죽은 후에 친구들이 악보를 모아 빈의 악보 출판가 핫즈 링거에 의해 출판됐다. 따라서 그를 '가곡의 왕'이라고 부른다. 그의 가곡 중에 으뜸으로 알려진 곡이 '마왕'이다.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그럴싸한 배경이 따라온다. 낭만적인 상상, 고독함에 빠진 사람, 자식을 사랑하는 어버이, 부모 형제 이야기 등 인간의 감정에 따라 음악이 만들어진다. 또한, 누군가가 악기 앞에 앉거나 연주한다는 느낌을 상상하며, 곡을 쓴다. 이러한 철학적인 사유는 고정관념의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치관 속에 작곡된다. 하나의 곡 속에 많은 옵션이 피어나며, 감성을 건드린다.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라. 한국의 대중가요 K팝(K-pop), 아이돌, 트로트 재동들이 우리의 얼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지 않은가. 슈베르트를 능가하는 우수한 음악인들이 우리 곁에 있다고 자부한다. 시대의 흐름 따라, 음악을 작곡하는 젊은 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600여 곡의 많은 가곡을 작곡한 '프란츠 슈베르트' '슈밤메를' 그의 애칭도 이채롭게 느껴진다. 친구들은 그를 보고, '순결한 청년의 영혼을 지닌 방랑자'라고 불렀다. 빗속을 걷다가 만난 귀엽게 우는 유치원생 덕분에 슈베르트 가곡 '마왕'을 듣는다. 도입부 무시무시한 말발굽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