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렁 더우렁

2025.10.14 14:38:53

김산옥

괴산문인협회 회원

귀촌 후 괴산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고향인 서울에서의 60년 생활을 접고 시골을 택할 때 나는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조용한 삶을 원했다. 족차족의(足且足矣)하기에 더 이상의 인연은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지난 6년여를 그렇게 살았다. 현재 벗과의 만남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음을 알기에. 그래서 하나둘 정리하려고 했었다. 왜냐하면 모든 지인이 서울에 있기에 서울을 왕래하는 것이 점차 힘들어질 시기가 곧 닥칠 것임을 의식했다. 하여 모임 중 하나를 정리했다. 또 올해 정기모임으로 동창회가 봄, 가을로 2회가 있다. 그러나 공지를 살펴보니 1시간을 더 늦춰진 오후 6시로 시간이 변경되었다. 수십 년을 변하지 않고 토요일이다. 주말이라 교통정체를 겪는 것은 당연하다. 주중에는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 3시간 이상이 소요될 때도 있다. 올 봄 모임에서도 1차가 8時에 끝났다. 장거리 운전이기에 음주는 물론이거니와 2차, 3차는 엄두를 못냈다. 주차료는 왜 이렇게 비싼지. 반세기를 같이 했지만 인연은 회자정리(會者定離) 이기에 아쉽지만 뜻이 맞는 친구와 소규모 모임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그런 내가 변했다. 시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겼다. 그것은 취미로 택한 '시낭송'의 세계다. 세월이 흐를수록 건강은 예전 같지 않고 기억력 또한 감퇴를 실감하고 있다. 이러한 나에게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최악의 공포가 있다. 바로 나 자신을 잃어가고 가족을 괴롭히는 몹쓸 병(病)인 치매다. 그런데 3년 전 여름 읍내 지인이 뇌활성화에 좋다며 시낭송에 동참하기를 권했다. 암기에 자신이 없어 망설이는 나에게 손가락 운동 만큼이나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며 계속 설득을 하였다. 나는 못이기는 척 하며 받아들였다.

예전부터 詩를 이해하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 시는 시어가 함축성을 지녔기에 난독증 환자처럼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낭송을 접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초보 단계에 있다. 그리고 암기에 성공하고 나면 여러 사람 앞에서 낭송하는 것 또한 쉽지가 않다. 전문 가수도 무대 공포증이 있다는 말이 왕왕 들리는데 그런 비슷한 처지가 되니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여럿이 둘러앉아 편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이 아니기에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나 혹은 산책 길에 나설 때 길 동무가 되어줘 점점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시는 뜻밖의 선물이 되어 마치 애완견과 산책 길에 동행하듯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시를 동무 삼아 걷다보면 어느샌가 1시간이 휙 지나가기에 만족감이 크다.

그리고 이곳(강의실)에서 2년여의 시간을 같이하며 보석같은 사람 여러 명을 만났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심성이 선하고 배려심이 뛰어나다. 우리는 서로의 나이 差를 극복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모임을 결성했다. 한달에 한 번 만나서 맛집 여행과 멋진 커피㉺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괴산에서 시작해서 점점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 생각지 않은 모임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 엔도르핀이 마구 솟구친다. 코드가 맞는 사람과의 어울림은 평소 속에 담아두었던 불만도 토로할 수 있어서 마음의 병도 치료해주는 마법이 있다. 때로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벗(朋)이 절실히 필요하다. 마음속에 쌓인 나쁜 불순물을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그 안에 신선한 산소로 가득 채우며 순환시켜야 정신건강에 좋다. 비록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대부분이어도 그 속에서 情이 생기고 사랑도 아지랑이 피어나듯 새록새록 피어난다. 마음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묵은 체증이 내려앉으며 감정의 정화도 이루어진다. 삶 자체가 외롭고 고독한 것이기에 그럴수록 사람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걸 간과하고 더이상의 모임은 무의미하다고 결론 내린 나의 오만함이라니. 동친들도 조금은 힘들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참석하여 회포를 푸는 걸로 정리하자.

고향을 등지고 노년에 서울이 아닌 괴산에서의 모임이라니~ 이 얼마나 뜻밖의 여득만금(如得萬金)인가! 고급진 낭송의 세계를 즐길 수 있게 길 안내를 해준 지인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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