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시원한 육수에 매끈한 면발, 냉면은 얼핏 쉬운 음식처럼 보인다. 집에서도 라면만큼이나 쉽게 끓여 먹을 수 있는 제품이 많아졌고 분식집이나 식당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후식으로도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같은 냉면은 아니다. 육수와 면발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시판 냉면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까다롭게 면과 육수, 양념장을 분석하는 이들도 그만큼 많다. 냉면 앞에 붙는 글자에 따라 취향을 논하기도 한다.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2가의 수암면옥은 청주를 대표하는 냉면집이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지난 2019년 문을 연 함흥냉면 전문점이다.
수암면옥 이승연 대표
이승연 대표가 정통을 고집하는 친구의 가게에서 처음 맛본 함흥냉면은 쫄깃한 면발과 매콤하면서 입에 감기는 비빔장, 감칠맛 가득한 한방 향이 코끝에 남는 시원한 육수로 각인됐다. 20여 년간 몸담은 직장을 그만둘 만큼 확실한 맛이었다.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배웠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스스로 자신 있는 맛을 만든 뒤 수암면옥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선보이는 것은 정통 함흥냉면이다. 면부터 육수까지 직접 만들어 정통의 맛을 재현한다. 냉면 한 그릇을 먹는 시간은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지만 한 그릇의 냉면을 만들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특유의 향이 맴도는 물냉면 육수는 복합적인 맛의 조화가 특징이다. 물냉면 육수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만드는 과정은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다. 직접 담근 동치미가 숙성되기를 기다리면서 커다란 들통에 사골육수 한솥을 따로 끓이고 감초와 계피 등 대여섯 가지 한방재료를 우린 탕을 끓인다. 거기에 고깃국물을 또 끓인다. 며칠이 걸려 각각의 맛이 깊게 우러난 국물을 모두 식히고 비율대로 조합하면 비로소 수암면옥 육수의 완성이다. 동치미의 시원한 맛과 한방의 은은한 향, 고기와 사골육수의 깊은 감칠맛이 어우러진다.
여느 비빔냉면보다 매콤한 맛을 강조한 비빔냉면에도 승연씨만의 비법이 담긴다. 잘게 썬 대파를 듬뿍 넣어 천연 단맛을 살린 양념장은 배와 사과, 오이 등 채소와 청양 고춧가루로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한 매운맛을 만든다. 2~3일간 숙성을 거치면 깊은 맛이 배어난다.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고구마 전분만으로 반죽한 면은 주문이 들어오면 뽑아낸다. 반투명한 뽀얀 색깔에 얇고 쫄깃한 맛이다. 물냉면의 육수나 비빔냉면의 양념장과 잘 어울리는 면은 가위로 적당히 잘라 한입에 넣고 씹을수록 고소한 특유의 맛을 음미하면 된다.
냉면만큼이나 인기 있는 음식은 불고기 전골이다. 아직도 냉면을 여름 메뉴로 생각하는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불고기는 3단계로 맛을 나눠 준비했다. 간장 베이스의 슴슴한 맛부터 청양고추를 조절해 약간 매운맛과 매운맛으로 손님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적당히 매콤한 중간 단계다. 신선한 고기를 받아 직접 손질하고 얇게 저민 불고기는 양념에 절인 것이 아니라 붉은빛으로 선도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가볍게 무친 것이 특징이다.
듬뿍 올라간 채소와 신선한 고기 본연의 감칠맛이 합을 이룬다. 냉면의 계절인 여름에도 불고기의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는 비법이다. 통으로 받아 질기지 않게 손질해 한방 육수에 끓이는 갈비탕도 깊고 부드러운 맛으로 손님들을 이끈다. 어머니의 손맛을 빌려 만든 김치, 백김치, 섞박지, 쌈장 등 함께 제공되는 모든 반찬은 직접 만든다.
번화가도 아닌 골목에서 차근히 이어온 세월은 조미료 없이 정성과 시간으로 우린 육수에 담긴, 또는 매콤하게 숙성한 깔끔한 양념장 아래 놓인 쫄깃한 면발을 계절에 상관없이 떠올리는 손님들이 인정하는 수암면옥의 진정성이다.
/ 김희란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