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흔터골

2025.09.24 14:20:02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흔터골이라는 지명은 순수한 우리말로서 '새터'라는 말과 상대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농토를 새롭게 개간하여 생활의 터전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집, 새로운 마을이 계속해서 생기게 되므로 '새터'라는 지명은 당연히 각 지역에 많이 존재할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하지만 유목 생활이 아닌 농경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살던 터를 버리고 새터로 이주하게 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전국의 지명을 살펴보면 '흔터골'이라는 지명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충북 음성군 삼성면 덕정리의 '흔터골'을 비롯하여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 계신리,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명성리,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미탄면 백운리,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 충남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곡리 등에 있으며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의 '승터골'도 '흔터골'에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이 '흔터골'이라는 지명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을에서 한 집이 이주했다고 하여 그 마을을 흔터골이라 할 수는 없고 마을 전체가 인근의 새로운 터(새터)로 이주했을 때 이주한 주민들이 옛 마을 터를 가리켜 흔터골이라 부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 주민이 모두 동시에 이주해야만 할 사건이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마을이 이주해야 할 사정이라면 화재나, 수해로 마을이 큰 피해를 입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지만 마을 전체가 이주할 정도의 예는 드물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농경지가 인근에 있으므로 집단 이주보다는 그 자리에 복구하여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예전에는 전염병이 자주 창궐했다는 역사 기록이 많아 나타나는데 보건 의료시설이 빈약하던 시절이어서 말 그대로 전염병 환자와 접촉을 하여 전염이 되면 치명적이므로 전염병 환자가 생긴 마을은 마을 주민 모두가 전염되어 몰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가축 전염병이 돌면 그 농장이나 그 지역을 통행 금지 및 폐쇄 조치하고 가축을 살처분하는 것처럼 전염병이 도는 마을을 통제하고 주민을 이주시킨 후 그 마을을 시체와 함께 소각시키는 방법이 유일한 대책이었을 것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와 인근의 송곡리 지역에 '흔터골'이라는 지명이 동시에 존재하고, 음성군 삼성면 덕정리의 '흔터골'도 '큰 흔터골'이 덕정리 60번지 일원에 있는데 인근의 덕정리 54번지 주변도 '작은 흔터골'이라 불리고 있는 것은 '흔터골'이 처음에는 일반명사로서 말 그대로 '옛 마을터'라고 부르다가 지명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음성군 삼성면 선정리에는 흥태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주민들에게 전해오는 말로는 마을의 옛이름이 '망태동, 망태박골'이었는데 이 마을에 잘 되는 사람이 없고 항상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여 '망'자를 '흥'자로 변경하여 '흥태동'으로 고친 후 온 마을이 부유하게 살게 되었다고 하지만 상대적 의미를 가진 유사한 음으로 추정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충남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의 흔터골이 '흥터골'로도 변이되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흥태동'의 원형은 '흔터골'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흥태동이라는 지명이 삼성면 천평리 바갈미 마을 인근에서부터 선정리 지역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 지역의 지형이 옛 천기면(川岐面)의 소재지인 '냇거름(냇물이 갈라지는 곳)'에 위치하며 이 흔터골 지역에서 새로 이주한 지역이 바로 인근에 있는 큰 마을로서 '새터, 신대(新垈)'라 부르다가 옛 이름인 '냇거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서 원인은 알 수가 없지만 이러한 뚜렷한 증거들로 보아 '냇거름과 흥태동'이라는 지명은 면소재지였던 큰 마을이 한꺼번에 이주하는 슬픈 사연을 지닌 지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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