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이 울릴 때
늦여름 단양, 눅눅한 밤공기 속에서 야간 응급실 접수가 시작된다.
피곤이 쌓일 즈음, 멀리서 119 사이렌이 울린다. 곧 들것에 실린 환자가 들어오고 그 뒤를 초라한 차림의 할머니가 묵묵히 따라온다.
환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접수를 마치는 순간, 문득 깨닫는다.
세월의 끝자락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자는 결국 배우자인 것을. 병상 곁을 지키는 아내의 손길은 그 어떤 의학 교과서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친구가 된 보호자
밤 아홉 시 무렵, 또 다른 구급차가 도착한다. 이번에는 가족이 아닌 친구가 환자를 지킨다.
"우린 젊을 때부터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어. 자식보다 더 자식 같지."
그 한마디에 응급실의 공기가 달라진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몸은 약해져도 끝내 손을 잡아주는 벗이 있다는 것.
응급실 문턱을 넘으며 듣는 "내가 옆에 있어 줄게"라는 말은 그 어떤 약보다 큰 치료제다.
-응급실이 지켜내는 존엄
응급실은 단순한 진료 공간이 아니다. 독거노인에게는 친구 같은 의사가, 가족에게는 안심을 주는 동행자가 된다.
단양군의 고령화 지수는 2025년 39.6%에 이르고 1인 가구 비율도 2020년 36.4%에서 2024년 40.7%로 늘었다.
차가운 숫자 뒤에는 누군가의 외로움과 불안이 숨어 있다. 민간 의료기관이 부족한 농촌에서,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응급실은 곧 지역의 안전망이자 삶의 버팀목이다.
-응급실의 역할과 사회적 합의
야간 접수로 몸은 지치지만 이곳에서 나는 매일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배운다.
응급실은 늙어가는 삶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현장이자 지역 공동체의 생명선이다. 그러나 그 운영은 의료진의 헌신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응급실의 문제는 단양만의 일이 아니다. 고령화와 지방 소멸을 겪는 우리 사회 전체가 직면한 과제다.
단양군의 2024년 세출예산 가운데 보건 분야 비중은 3.5%에 불과하다.
필수 의료를 지탱하는 비용은 특정 개인이나 병원만의 몫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할 사회적 합의다.
사람 곁에 남는 것이 결국 사람인 것처럼, 응급실은 우리가 모두 지켜내야 할 공동체의 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