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알래스카

2025.09.23 14:30:50

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올여름은 참으로 무더웠다. 한낮 쏟아지는 불볕 아래서는 숨이 턱턱 막혀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이제 소서, 대서니 초복, 중복, 말복이니 하는 절기 구분도 거의 맞지 않는 것 같다. 또한 전통적인 사계절 구분이 희미해지고 겨울의 삼한사온, 여름의 삼복더위, 가을의 천고마비 등 계절감을 나타내는 옛말은 이제 정말 옛날에 묻혀버리고 마는지도 모른다. 지구 기후 위기가 화두가 되어가는 이 시대에 여태까지 찬란히 발전을 거듭해 온 우리 인류 문명이 황혼에 다다른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산업혁명 이후 발생하기 시작한 대기 중의 온실가스가 주범이다. 이는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를 태우거나 산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 등으로서 지구의 대기를 형성한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을 다시 대기로 복사열을 발산하는데 적정한 균형을 이룬 지구의 대기권에 의해 그 열이 가두어짐으로써 비닐하우스처럼 지구를 따뜻하게 만든다. 문제는 자연적인 균형상태를 이룬 대기권이 과도한 인간 활동과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발생하는 과도한 온실가스 때문에 그 균형이 깨진다는 데 있다. 즉 그 가스들을 내보낼 것은 내보내고 가두어 둘 것은 가두어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데 과도한 온실가스로 인한 온실효과로 지구가 자꾸만 더워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구는 갈수록 폭염 폭우 해빙 등 심각한 이상기후 현상을 초래한다. 지구 공동체는 이러한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탄소중립' 등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여름 불볕더위에 가위눌려 있던 차에 마침 친척의 초청으로 알래스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올여름 무더위를 잠시나마 피할 수 있으리라 기대가 컸다. 알래스카는 한국과 정반대의 기후를 보여주었다. 여기는 한 여름이 우리의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다. 파란 하늘이 땅에 닿을 듯하고 그 아래 구름은 마치 손에 잡힐 듯했다. 여기저기 명소 가는 길은 드넓은 평원 속으로 쭉쭉 뻗은 길가에 사람이 사는 건물보다는 무성한 나무들만 보였다. 낮의 길이가 길어 밤 9시쯤 보는 석양은 어떤 때는 용광로 불빛 같았다. 겨울은 지독히도 춥다는 데 여름은 천국인 듯했다. 그런데 그 천국의 속살은 지구 미래에 충격적인 증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해안선을 따라 관광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4시간 반을 달리면 스워드에 도착하고 근처에 피요르드 국립공원 안에 엑싯빙하(Exit Glacier)가 있다. 이 빙하는 특이하게 강이나 바다가 아닌 산꼭대기에 있어 걸어서 가까이 가볼 수 있다. 빙하 가는 길목에 이런 연도 표시 표지판이 있다. 1815, 1889, 1917, 1926, 1978, 2005, 2010 이는 빙하가 녹아 후퇴한 연도를 말하는데 처음 500m 후퇴에 100년, 그다음은 50년, 최근에는 12년이 걸렸음을 알려준다. 그만큼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음을 말한다. 이 같은 속도라면 얼마 안 가서 엑싯빙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온 지구가 계속 더워져 극지방 빙하까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이상기후가 오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미래가 닥쳐올까 두렵다. 이 모두가 우리 인류가 자초한 결과이므로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엑싯빙하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유난히 붉고 아름다운 알래스카 석양을 보았다. 마지막 황혼의 불꽃인가. 그 붉음에 오히려 내 우울한 마음이 빨려 들어가 점차 따스해짐을 느꼈다. 이 소중한 하나뿐인 지구, 우주에서 보는 아름다운 파란 별, 인류가 영원히 푸르게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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