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한옥을 사랑한 가족

2025.09.17 17:59:15

서도호 작가, 작품들.

ⓒ이동우
한옥을 사랑해 성북동에 멋진 한옥을 짓고 살았던 부부가 있다. 한옥을 지은이는 산정 서세옥(山丁 徐世鈺 1929~2020), 정민자 부부이다. 서세옥은 대구 출생으로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하자 미술학부 1회 학생으로 입학한다. 그가 4학년 때 생긴 국전에 작품을 출품해 국무총리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화려하게 데뷔한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26세에 모교 교수가 되고, 32세에 국전 심사위원이 되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산정은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발묵 기법을 위주로 해 수묵 추상을 하던 산정은 인간을 표현하는데 일체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최소한의 형상을 추구한다. 산정은 결국 인간 형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人'으로 단순화 시켰으며, 이후 이 인간 형상들이 맞잡고 어우러지는 모습을 말년까지 줄곧 그린 한국화의 거장이다.

정민자는 한옥에서 태어나 자랐고 산정과 결혼하면서도 한옥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한옥에 살면서 그 멋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들 부부는 1970년대에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연경당을 본뜬 한옥을 짓기로 한다.
ⓒ이동우
평소 알고 지내던 목수에게 한옥을 짓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배희한(1907~1997년) 목수를 추천해 준다. 배희한은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로 그 당시 잘 나가던 실력 있는 대목수였다. 산정은 배 목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5년 동안 정성 들여 집을 짓고,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라는 뜻의 무송재(舞松齋)라 이름을 붙인다.

정민자는 한옥을 비롯해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출범한 재단법인 '아름지기'에 고문으로 몸담았다. 이 단체는 한옥이 많이 남아있는 북촌의 난개발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고,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인쇄소였던 안국동 한옥 한 채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보수만을 계획했으나 뜯어보니 목재가 다 썩어 있는 바람에 새로 한옥을 짓다시피 해 완성한다.이 과정에서 정민자는 한옥에 살면서 몸으로 체험한 지혜를 총동원해 리노베이션 하면서 '아름지기의 한옥 짓는 이야기'라는 책을 엮는다. 길을 가다 잘생긴 한옥을 보면 기웃거릴 정도로 한옥을 좋아하는 필자는 오래전에 이 책을 구입해 한옥이 그리워질 때마다 종종 꺼내 보고 있다.

산정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한옥 지붕 아래에서 화가인 아버지와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큰아들 서도호(1962~ )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둘째 아들 서을호(1964~ )는 건축가로 성장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을 떠나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생활하던 서도호 작가에게 고향집은 그리움의 대상이자 향수를 느끼게 하는 장소였다. 마냥 자유롭기도 하지만 절제와 경계가 분명한 한옥에서 10살 때부터 산 서도호는 삶 속에 한옥을 녹여내는 작업을 한다. 성북동 집을 그대로 섬세하게 본떠 실물 크기의 헝겊으로 집을 제작해 전 세계를 누비며 전시한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개관한 이래 생존작가 처음으로 서도호 작가에게 개인전을 열어준다. 이 전시회에서 무송재 쪽문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투영', 무송재를 그대로 본뜬 비단 설치 작품 '서울집/서울집', 미국 집에 날아와 부딪치는 형상을 한 '별똥별-1/5' 등을 선보였는데 백남준과 이우환 다음으로 한국을 대표할 미술가라는 극찬을 받는다.

동생 서을호도 통풍이 잘되는 주거공간의 한 원형으로 한옥을 생각하며 설계작업을 한다. 두 형제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예술제인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한국관 대표작가로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서도호는 어느 미술평론가와 인터뷰하면서 "1970년대 아버지는 우리 집을 19세기 한옥으로 지으셨어요. 저는 매일 대문을 열고 학교에 갈 때마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을 경험했고, 밖에서 집으로 들어갈 땐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연경당 자체가 순조 임금 시절 궁궐 안에 선비의 집, 즉 민간인의 집을 지은 거예요. 그러니 19세기 당시에도 현실적이지 않았던 집이죠. 1970년대에 그 한옥을 본떠 지은 우리 집도 현실과 거리가 있지만, 제가 그 집을 섬유로 만들어 미국에 가져온 것도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요. 모두 본래 문맥에서 떨어져 나와 엉뚱한 곳에 놓인 공간이죠."라며 무송재와 자신의 작업의 관련성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어릴 때부터 생활한 집이 작업하는데 크게 영향력을 끼쳤음을 엿볼 수 있다.
ⓒ이동우
현대 미술세계는 의미 있고 남이 하지 않는 개성적인 작품을 선보여야 주목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서도호는 자신이 자란 집을 헝겊으로 만들어 이를 거꾸로 매단 작품으로 세계적인 미술가가 됐으니 무송재에게 많이 고마워해야 한다. 그 아이디어는 한옥에서 살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아파트에서 자랐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까.

한옥 덕후인 필자는 번듯한 작업실(이동우 미술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한 한옥 한 채를 얻어 대청마루에 벌러덩 누워 잘생긴 서까래를 올려다 보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싶다.

한옥, 책, 나무, 달항아리, 작품에 대한 욕심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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