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119대원의 도움 한번 안 받은 경우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살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했던 소방관 2명이 최근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생겼다. 한 사람은 극심한 트라우마(Trauma)에 시달리다 극복을 못하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또 한 사람은 실종된 지 열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태원 참사 이후 정신적 고통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소방관이 1천3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해 전국 소방관 설문조사 결과 소방관 10명 중 3명이 PTSD나 우울증 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는 '상처'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또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보통 트라우마와 같은 개념으로 쓰인다. 나쁜 기억이 지속적으로 떠올라 마음속의 분노, 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 자기혐오로 발전하여 우울증, 피해 망상을 불러오기 때문에 제때에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는 PTSD를 '단순한 공포 반응이 아니라 삶 전체 구조가 붕괴되는 사건 이후 발생하는 지속적인 손상'으로 정의한다. 그렇기에 회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의료지원체계와 주위의 관심이 요구되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트라우마를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는 트라우마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우리가 겪었던 일에 대한 충격도 사람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외상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통계가 있지만 남성은 자신의 약함을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차이'를 인정하는데서 치유는 시작된다. 똑같은 사건을 겪었어도 어떤 사람은 멀쩡하고 어떤 사람은 힘들어한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자신을 책망하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데, 본인 스스로 어깨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심리학 교수 '숀'이 반항아 '윌'에게 반복해서 말하는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네가 겪고 있는 상처의 원인이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아픔 속에 갇혀 살아가도록 사회가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세계 2차 대전을 무대로 한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 도살장>에서 누군가 죽을 때마다 등장하는 '뭐 그런 거지 (So it goes)'. 다소 냉소적이고 체념적인 말이지만 '그런 게 인생이다'라고 담담한 태도가 엿보이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134명이나 되는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다. 소방공무원의 국가 차원의 돌봄이 시급한 이유다. 지난 8월 숨진 소방공무원도 참사가 발생한 2022년도에 진료 및 상담이 집중되어 단기 지원 체제에 머물렀는데 이는 '재난 현장 경험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트라우마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그간 수없이 들어왔던 '예산과 전문 인력 부족'이란 말도 이젠 식상하다. 2011년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이때 투입된 소방관, 경찰관 등을 대상으로 한 건강검진 및 치료 프로그램을 2090년 까지 운영한다고 한다.
사고 현장에서 인명 구조 및 사고 수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태원 참사같이 터무니없는 사고가 아예 나지 않는 것이다. 소방관 보다야 못하겠지만 일련의 사고,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도 스트레스다. 국민 누구나 마음 편한 세상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