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저 그런가보다 여겼다. 아이들은 대개 밤잠이 깊지 않고 자주 깨는 법이라고 하니까. 하지만 우리 아이는 무언가 달랐다. 돌 무렵까지 단 한 번도 잠을 길게 잔 적이 없었다. 새벽이면 자지러지게 울었고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늘 배고파했기에 나는 그때마다 분유를 타서 입에 물려야 했다.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동그랗게 나와 있었다. 키도 또래에 비해 작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영유아 검진 때 의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렇게 자주 깨는 게 괜찮을까요?" 그 한마디가 우리 가족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검사 결과는 '당원병'. 간과 근육에 당은 저장되지만,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꺼내 쓰지 못하는 병이다. 혈당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어 희귀 질환으로 분류된다. 혈당이 떨어지면 갑작스러운 의식 저하나 경련이 올 수 있다. 조금씩 자주 먹어야 했기에 처음 허락된 식사는 커피스푼 한 스푼 분량인 5그램의 밥이었다. 대신 두 시간마다 옥수수전분을 찬물에 타 젖병에 담아 먹였다. 옥수수전분은 몸속에서 천천히 분해되어 혈당을 서서히 올려준다. 급격한 혈당 저하를 막는 데 꼭 필요한 식이 요소다. 그렇게 하루 열두 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식사 시간을 챙겨야 했다.
간호사 출신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이 병에 대해 전혀 몰랐다. 혈당계 사용법, 식품 성분표 읽기 등 필요한 것들을 새로 익혔다. 철저한 관리 없이는 일상이 불가능했다. 특히 식사 간격과 섭취하는 음식에 각별히 신경 써야 했다. 단당류인 포도당, 유당, 과당은 혈당을 급격히 변화시키기 때문에 엄격히 제한해야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옥수수전분과 대체 간식을 꼭 챙겨 보냈다. 두 시간마다 먹어야 하는 아이를 위해 선생님들이 세심하게 돌봐주시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의료진 또한 우리 가족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희귀 질환이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아이 상태를 세심하게 설명하며 식사 관리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작은 목소리까지 귀 기울여주는 그들의 관심과 헌신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그 아이는 네 살이 되었다. 두 시간마다 먹던 옥수수전분도 네 시간 간격으로 늘었고 밥도 제법 많이 먹는다. "엄마, 나 혼자 먹을 수 있어!"라는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하다. 새벽에 일어나 전분을 챙기는 일은 여전히 내가 하고 있다. 아이의 건강이 가장 중요한 만큼, 직장 복귀는 아직도 먼 이야기로만 느껴진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당원병 검사는 당연한 절차였다. 두 아이가 같은 질환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고 먹먹하게 했다. 하지만 두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엄마, 사랑해요."라고 속삭이는 그 순간들이 큰 위로가 된다. 그 한마디에 오늘도 버틸 힘을 얻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좌절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더 자주 품으려 한다. 아이가 아침에 웃으며 등원하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고, 가족끼리 사랑의 언어를 주고받는 순간들에 감사하다. 때론 지치고 불안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함께 웃고 밥을 먹고 잠드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완벽하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