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위상이 사람과 비슷해져 나이가 좀 든 개를 어르신에 빗댄 '개르신'으로 대우하는 세상이다. 어떤 '개르신'은 오히려 평범한 어르신보다 더 존중을 받기도 한다.
동물 사료 제조회사에서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 프리미엄급 고급 개 사료를 출시하고 신제품에 대한 설명회를 마련했다. 담당직원의 장황한 설명이 끝나자 참석자가 물었다. "사람이 먹어도 됩니까?"
직원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못 먹습니다" 직원이 부정하자 참석자가 다시 질문했다. "유기농 청정원료로 영양가 높고 위생적으로 제조된 개 사료를 왜 우리가 먹지 못한단 말입니까?" 직원은 더욱 단호하게 답했다. "비싸서 못 사 먹습니다." 웃픈 유머다.
영국의 저명한 도예가 앤드류 리빙스턴(Andrew Livingstone)은 도예를 통해 개념 예술을 실천하는 작가다. 현 시대의 윤리적, 정치적 쟁점을 시각화한 그의 작품은 익숙한 사물을 비판적 사유의 도구로 전환시킨다.
지난 2009년 한국 세계도자비엔날레 명예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의 신작을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본전시장에서 만났다. 이번 작품의 주제 역시 '인간 중심적 시선에 맞서기 위한 공예적 실천'이다.
귀여운 도자기 강아지 세 마리를 나란히 배치한 전시작을 처음 대하면 누구나 미소를 짓게 된다. 실물 크기의 도자기 강아지는 모두 손뜨개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털이 긴 강아지에게 입힌 화려한 털옷이 지나치게 무거워 보이긴 하지만 무심코 지나치면 니트 옷을 걸친 흔한 강아지일 따름이다.
그런데 강아지 옷 등 뒤에 들어 있는 문구가 예사롭지 않다. 세 마리의 강아지 옷에는 '내 몸은 내게 선택권이 있어' '엉덩이가 커 보이니?' 등의 문구가 들어 있다. 그 중 '상품화된 존재'라는 문구가 가장 비범하다.
동물에 대한 인간 중심적 사고에 일격을 가하는 날카로운 풍자가 아닌가. 작가의 작업 의도대로 우리는 애완동물을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체가 아닌 단순한 장식물이나 과시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잣대에 맞춰 꾸미고 교육하는 것이 동물에게는 고통을 넘어 학대일 수도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옷을 입은 강아지를 흔하게 본다.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이다. 사랑하는 반려견을 위한 옷이 다양하게 시장에 나와 있다. 운동복, 패딩, 정장 재킷과 넥타이, 파티용 드레스와 트렌치코트, 비옷과 여름용 망사 슈트까지 구색이 완벽하다. 명품브랜드에서도 반려견 옷을 판매한다. 물론 입이 벌어지는 가격이다.
그러나 털이 짧거나 늙고 병들어 체온 보호를 해주어야 할 강아지를 제외한 대다수의 강아지는 이미 몸이 털로 덮여 있어 더 이상 옷이 필요치 않다. 그래서 강아지가 입은 옷을 코트라고 부른다. 쓸데없이 덧입은 옷이라는 뜻일 것이다. 옷을 입힌 주인은 흐뭇하지만 막상 강아지는 입고 있는 옷이 불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름에는 일사병 같은 증상의 열중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영국 동물복지자선단체 RSPCA는 반려견에게 불편한 옷을 입히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며 애완견은 무거운 옷을 입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음을 계도하고 있다. 자신의 애완동물을 '패션 액세사리'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는 RASPCA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예비엔날레에 전시된 앤드류 리빙스턴의 작품 '니트 옷 입은 강아지 세 마리'는 공예를 통해 윤리적 메시지를 던진 풍자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