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장면을 추가했다. 국회가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곳이라는 인식이 퍼졌었는데 지난 1일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보여준 실패한 패션쇼를 보면서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가 숨어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애초부터 웃기려는 의도가 없었으나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참을 수 없도록 만드는 솜씨는 체질화 된 고도의 개그 능력이거나 허무한 '봉숭아 학당'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후자로 본다.
***극단적 대립 '봉숭아 학당'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에 따라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리는 국회본회의장에 민주당과 여권 의원들이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우 의장은 "정기국회 시작을 알리는 날 국회의원들이 함께 한복을 입고 본회의장에 앉은 모습이 국민들께도, 세계인에게도 한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부응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대다수 의원들을 포함해 개혁신당 의원들도 추석 명절 분위기 물씬 풍기는 형형색색의 한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만면에 함박웃음을 머금은 이들은 서로에게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덕담과 함께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개회식 영상을 보면 민주당 의원 가운데 한복이 아닌 양복 차림의 의원들도 군데군데 여러 명 보였는데 이들이 한복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검정색 양복과 검정색 넥타이, 검정색 '근조 의회민주주의' 리본을 맨 상복 차림으로 개회식에 참석했다. 국민의힘은 최근 자당이 추천한 인권위원 선출안 부결,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 처리 등 집권여당의 입법독주에 항의하는 뜻에서 상복을 입기로 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민주당이 기업을 안 좋게 하는 법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고, 특검도 연장하려 한다. 헌법질서와 의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어 웃거나 즐길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날 한복 vs 상복으로 나뉜 국회본회의장 풍경이 한국 정치의 극단적 대립을 그대로 보여줬다. 축제를 이어가고 싶은 여권과 돌파구를 찾으려는 야당… 국회 다수 의석을 장악한 여권이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리해 입법권과 행정권을 완전히 틀어쥐었음은 물론 사법권까지도 원하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주무르는 무한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과거 군부정권도 사법권을 쥐락펴락하며 정권유지의 도구로 전락시키기는 했으나 최소한의 염치를 지키려는 듯 국민들 눈치를 보는 시늉은 했다. 그러나 지금 다수의석의 여권은 입법 권력을 동원해 아예 법을 바꾸는 방법으로 사법권을 무력화 시킨다. 이름만 법관일 뿐 시류에 영합하기 바쁜 판사들은 법을 바꾸기도 전에 스스로 알아서 기어든다. 이러니 사법권마저 집권여당의 입맛에 맞도록 개조하여 들러리 판사들로 채우는 건 아무 일도 아니다.
***K-국회의 다음 개그는
집권여당 권력의 크기는 야당의 견제력과 반비례 관계에 있어 무능한 야당을 만날수록 여당은 자신들이 권력독주를 제어하기 힘들다. 국민의힘은 야당이라는 지위의 엄중함을 잘 모르는 당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권이 무너지기까지 집권여당으로서 대통령 권력을 전혀 견제하지도, 지원하지도 못한 채 내부로부터 무너진 바 있다. 권력을 가진 집권여당도 유지하지 못한 당에게 전투력 충만한 야당이 되길 기대하는 게 무리 아닐까 한다.
오죽이나 내세울 자랑이 없었으면 한복 패션쇼라도 해 보자는 국회, 한복과 상복이 대치하는 그로테스크한 봉숭아학당을 세계에 드러낸 K-국회의 다음 개그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