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가 있다. 변호사들의 이야기이다.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재판 과정이 흥미로울뿐더러 생활에 필요한 법률 지식을 배울 수 있어서 챙겨보고 있다. 얼마 전, 전 남자친구를 고소한 모델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가 원한 것이 몸에 남은 흉터가 아닌 마음 상처에 대한 보상임을 이해하며 결말이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마음은 켈로이드가 아니길 바란다는 변호사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켈로이드란 피부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섬유조직(콜라겐)을 생성하여 생기는 비정상적인 흉터를 말한다.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전적인 요인이 많다고 한다. 보통은 상처가 아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흔적도 서서히 옅어지는데, 켈로이드 피부인 사람들은 상처보다 큰 흉터가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흉터는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외부자극을 받으며 점점 더 크고 단단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 요즘에는 레이저 치료법이 나오긴 했다는데, 이미 생긴 켈로이드는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고, 치료해도 재발할 우려가 짙어 처음부터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상처를 갖게 된다. 보통 자잘한 상처들은 아물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켈로이드 피부를 가진 사람은 평생 얼마나 불편할까. 작은 상처라도 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며 항상 긴장한 채 살아가려면 심리적 위축은 물론 평범한 사회생활 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
깊은 상처일수록 흉터가 오래가는 것 같다. 내 어깨에도 흉터가 있다. 어릴 때 맞은 불주사 자국이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크고 살짝 튀어나와 있고 붉은 흔적이 선명하다. 그 때문에 혹시 켈로이드성 피부가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불주사는 백신주사라서 백신이 제대로 체내에 작용하느라 생긴 염증의 흔적이란다. 내가 만약 켈로이드 피부였다면, 어깨뿐 아니라 어릴 때 다쳤던 이마에 혹을 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가 잘 아는 동화 '혹부리 영감님'의 혹이 켈로이드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살다 보면 마음에도 흉터가 생긴다. 상처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 그 흔적이 아주 오래 남을 수도 있다. 몸에 난 상처를 그냥 덮어버리면 주변 피부까지 곪아 더 큰 상처로 번질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곪기 전에 입 밖으로 토해내 응어리를 풀어주지 않으면 심각한 마음의 병으로 발전하게 된다.
막내아들을 출산했을 때의 일이다. 아들은 출산 과정에서 혈액이 탯줄을 타고 역류하는 바람에 태어나자마자 빈혈이 생겼다. 그 원인을 찾기까지 열흘 동안, 나만 퇴원하고 아들은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초유를 먹여야 했기에 매일 젖을 짜서 얼려두었다가 아기 면회하면서 간호사에게 전달했다. 찬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꽁꽁 싸맨 채 병원에 가면 유리 벽 너머의 아기는 눈을 뜨지 못한 채 어느 날은 발에, 또 어느 날은 관자놀이 쪽에 수액 주삿바늘을 꽂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 매번 힘겹게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결과는 다행히 피가 50ml 모자란 단순 빈혈이었다. 곧 혈액형이 같은 남편이 지정 수혈을 해주자 아기는 금방 눈을 떴다. 그날로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오는데, 아이와 떨어져 속앓이했던 그 열흘 만큼이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혼자 퇴원했던 다음 날, 아침에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한술 뜨고 있을 때 아버님 전화를 받았었다. 그 첫 마디를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아버님은 '고생했다, 축하한다, 몸은 괜찮냐'고 하지 않으셨다. 대신 대뜸 이렇게 소리치셨다.
"너는 애를 병원에 놔두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눈물만 뚝뚝 흘렸고, 우는 나를 달래려다 엄마도 속상해서 눈물을 훔치셨다.
갑자기 그때가 떠올라 눈물 바람을 하며 아버님을 향한 야속한 마음을 쏟아내면 남편은 듣기 싫어했다. 아버님은 그 연세의 다른 노인들처럼 괴팍하지 않고 합리적인 분이셨다고 논점을 바꿔버리곤 했다. 물론 아버님은 합리적이고 현명하셨다. 착한 며느리라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 우리 애들도 참 예뻐해 주셔서 늘 감사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가슴에 못처럼 박힌 그 한마디가 건드리기만 해도 온몸을 관통하는 통증을 유발했다. 웬만한 마음 상처는 몇 번 입 밖으로 말하고 나면 슬그머니 잊히던데, 그 기억만은 수없이 토해내도 계속 아팠다. 그만 좀 하라는 남편의 핀잔 때문에 켈로이드처럼 더 큰 갈등으로 불거진 적도 많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도 20년이 넘었다. 문득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과 이마를 마주 대고, 이제 더는 너를 볼 수가 없겠구나 하시던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좀 더 오래 사셨다면 그 손자가 의젓하게 자라도록 지켜보면서 효도도 받고 많이 흐뭇해하셨을 텐데…. 그러고 보니 아버님의 '한마디'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지도 한참 된 듯하다. 당시 아버님은 장손자를 잃고 힘들어하실 때였다. 중학생이었던 장조카가 새벽에 목욕탕에 갔다가 사고가 났다. 하나밖에 없는 손자를 잃은 아버님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 그러다 손자가 태어났는데, 그 귀한 손자가 아프다고 하니 얼마나 걱정되고 불안하셨겠는가.
이제 상처가 아물고 있는 걸까? 사람의 마음은 켈로이드가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