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팔월의 햇살 아래

2025.08.28 15:54:35

팔월 어느 날 직접 기른 고추를 수확해 말리고 있다.

ⓒ이수안 시민기자
팔월의 음성 날씨는 대체로 평화롭다. 동네 뒤로 우뚝 솟은 가섭산의 신록이 여름 끝자락을 향해 달리고, 새파란 하늘에는 동화 속 풍경처럼 뭉게구름이 그림을 바꿔 그리며 흐른다.

과수원에는 금빛 햇살을 머금은 복숭아가 달게 익어간다. 내 작은 텃밭에는 다복다복 열린 고추가 꽃처럼 붉게 물들고 있다. 농사에서 은퇴한 작년에는 시원찮았는데, 올해는 제법 고추 따는 손맛을 볼 정도로 수확이 많다. 텃밭 농사 2년 차에 벌써 태양초 고춧가루로 김장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이웃 농부가 구슬땀을 흘리며 복숭아를 수확하는 동안, 나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고추를 하나씩 펼쳐 놓는다. 40년 과수 농사 세월에 소소한 재미를 즐길 틈이 없었는데, 느긋하게 고추를 널어보는 호사를 처음 누려본다. 생업에서 벗어나 여유를 누리는 이 시간이 새삼 소중하다.

은퇴한 지난해에는 매사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도 바쁘던 일상이 멈춰 선 것 같은 공허함이 낯설었다. 여전히 땀 흘리는 이웃을 보며 괜스레 미안해 그들의 눈길을 피하고는 했다.

아직도 그런 마음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숙제를 다 마치고 얻은 한적한 시간을 기꺼이 누리려 한다. 젊은 날에는 미처 보지 못한 텃밭의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고개 들어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에 마음을 실어 저 먼 곳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정원의 꽃을 오래 바라보고, 고추 한 알이 전해 주는 작은 행복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햇살 한 줄기에 미소 짓고, 고추 한 알에도 마음 붉게 물드는 지금이 내겐 가장 귀한 시간이다. 오래 달려온 세월 끝에서 얻은 것은 느림 속의 충만함, 소소한 기쁨의 깊이였다. 계절이 저마다 다른 빛깔을 지니듯, 내 삶도 앞으로 또 다른 색을 입어갈 것이다. 한가한 햇살 아래 소박한 일상의 한유를 누리는 팔월 하루다. / 이수안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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