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열대야가 지속 중이니 조심하라는 안내 문자가 매일 온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이다. 불볕더위와 이상 기온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으로 무더위가 계속되기도 하고 대책 없는 폭우로 삶의 터전인 집들과 한 마을이 거센 물결에 종잇장처럼 둥둥 떠내려가는 영상을 뉴스로 접하며 안타까웠다.
낮부터 밤새도록 에어컨을 돌리며 실외기는 괜찮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한다. 불볕더위는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제라늄에도 영향을 줬다. 봄에는 서로 뒤질세라 형형색색의 꽃대를 올리며 화사하게 폈던 제라늄이 날씨가 더워지며 무름이 오고 하엽이 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못 견디고 하나둘씩 가버리기 시작했다.
제라늄은 고온다습한 여름 날씨를 제일 싫어하는 식물이다. 지난여름에도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 주며 애지중지했는데 막판 늦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우르르 초록별로 가버렸다.
허망한 마음에 식물 키우기를 접을까 했었는데 다 죽어가던 화분에 새순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고 고마워서 다시 물을 주게 된다. 혹한기의 겨울을 견디고 따뜻한 봄이 되니 내생에 최고의 봄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예쁜 꽃들이 화사하게 만발해서 나를 기쁘게도 했다.
우리 집 제라늄들을 내가 힘들 때마다 위로를 해 주고 내가 무기력해져도 그때마다 예쁜 꽃으로 에너지를 주는 소중한 반려 식물이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 함께 시작한 식물이라 그런지 내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반려 식물이고 나는 충실하게 식집사 노릇을 하며 매일 물도 주고 수형을 관리하며 함께 한 식물이다.
그렇지만 내가 식집사 노릇에 충실해도 무더운 날씨를 피해가기는 어렵다. 이번 여름에는 집을 비워야 하는 날들이 여러 번 있었는데 창문을 꼭꼭 닫고 외출했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오니 베란다 안은 40도 이상 올라가고 습도도 80을 넘으니 제라늄이 견디지 못해 하나둘씩 빈 화분이 늘어갔고 수형도 엉망이다.
미련없이 이 많은 제라늄을 보내야 하나 아니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가을을 기다리며 수형을 정리하고 삽목하며 손을 봐줘야 하나 고민이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작은 화분일 수도 있는데 내게는 늘 기쁨을 주는 소중한 제라늄이기 때문이다.
작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제라늄 화분들을 보며 이름을 불러 본다. 노동초라 불리며 쉼 없이 꽃대를 올려 주는 사가, 분홍색 꽃이 예쁜 은혜란, 튤립 모양의 꽃이 피는 판도라와 송 시리즈 가족들, 큰 화경으로 화려하게 피어나는 러시아 제라늄과 지난봄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줬던 리갈 제라늄을 차례로 훑어봤다. 결국 내 손은 미련을 떨구지 못한 채 하엽들을 떼어내고 있었다.
"그래, 제라들아, 이 더운 여름도 끝을 향해 가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면 시원한 가을이 올 거야. 그때까지 지금의 힘듦을 참고 견뎌 보자, 다시 꽃이 피어나는 그 시간을 기다리며 함께 다시 시작해 보자"라고 제라늄 화분에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