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할머니집의 추억

2025.08.19 16:14:14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손님에게 욕부터 하고보는 욕쟁이 할머니집이 동네마다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식당들이다. 오래전 청주에도 성안길 철당간 뒤편 골목에 욕쟁이 할머니가 끓여주는 국밥집이 있었다. 양지를 푹 고은 진국육수에 대파를 아낌없이 넣은 칼칼한 육개장을 팔았다.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이미 사라진 식당의 구수한 육개장 냄새가 풍기는 듯하다. 요즘도 간혹 욕쟁이 할머니집을 상호로 내건 음식점이 있긴 하지만 욕을 하는 할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다짜고짜 날아드는 욕을 웃으며 받아줄 사람도 이젠 드물 것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레전드는 대통령을 야단친 전주 삼백집 할머니의 일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주 시찰 중 수행원에게 전주 맛 집의 콩나물국밥을 배달시키라 했다. 수행원이 배달을 부탁하자 삼백집 주인 할머니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썩을 놈이 어디서 배달 타령이냐며 먹고 싶으면 와서 처먹으라고 한 할머니의 말을 전하자 박 대통령은 '그러면 가야지'하고 선선히 삼백집을 찾아갔다. 수행원들이 할머니에게 오시는 손님이 높으신 분이니 욕은 절대 하지 마시라 당부했지만 할머니는 수행원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그 뒤의 상황이 압권이다. 손님 식탁을 돌면서 콩나물국밥 뚝배기에 날계란을 하나씩 넣어주던 할머니가 국밥을 받은 대통령을 발견했다. 국밥에 계란을 넣어 주고 한참 모습을 살피던 할머니가 대통령에게 말을 건넸다. "박정희를 쏙 빼닮은 놈이네? 누가 보면 대통령인 줄 알겠다, 이놈아!"

잘도 처먹는다며 한바탕 욕을 퍼붓고 지나치던 할머니는 다시 대통령에게 돌아섰다. "그래도 박정희는 큰일을 했지. 계란 하나 더 처먹어!" 대통령과 닮은 놈이니 계란 하나 더 준다며 국밥에 날계란을 추가로 넣어 준 할머니에게 박 대통령이 농을 던졌다. "내가 박정희를 닮은 게 아니라 박정희가 나를 닮은 건데요?"

나중에 사람들이 진짜 대통령에게 욕을 했다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할머니는 '절대 박정희가 아니었다'며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욕을 먹은 것처럼 좋은 얼굴로 국밥을 비운 대통령의 아량이 푸근하다.

욕 대신 경고문을 도배한 식당이 화제다. 3장의 대형달력 뒷면에 매직펜으로 또박또박 내려 쓴 안내문의 글자마다 짜증이 배어있다. 첫 번째 장에는 '드시던 국물 데워드리지 않아요. 혼자 오신 손님, 대화 걸지 마세요. 이리와라가라 하지마세요, 주문은 그냥 말씀하시면 됩니다. 영업시간, 휴무일, 입구에 쓰여 있어요."

두 번 째 장엔 "1인 1메뉴 주문해 주세요. 고기국수가 어떤 음식인지 모르시면 뒤편에 설명을 읽어보세요. 김치는 매콤한 김치로 종류는 한 가지입니다. 안 매운 거 없어요. 앞 접시 제공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엔 "제주도에서 안 왔고 제주도 사람 아니에요. 반말하지 말아 주세요. 곧 고등학생 학부모입니다. 수저는 둘 중 하나만 사용 부탁드려요. 식사 후 빠른 이동 부탁드립니다."가 적혀 있다.

이렇게 살벌한 경고문보다는 욕쟁이 할머니의 걸쭉한 욕을 듣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우울하던 참에 논란이 된 경고문을 유머러스하게 패러디한 식당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국물 데워드려요. 혼자 오신 손님 환영합니다. 이리 오너라 하시면 달려갑니다. 반말하셔도 동갑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접시 종류별로 드립니다, 대야도 있어요.' 고맙게도 청주에 있는 식당이란다. 오늘 점심은 이 집에서 해결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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