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원숭이 효과'와 탄소중립 실천

2025.08.11 14:54:42

김연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대학교 교수

1953년, 일본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의 학자들이 미야자키현 고지마(幸島)에서 야생 원숭이들의 먹이 섭취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곳의 원숭이들은 평소 고구마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낸 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자들은 뜻밖의 장면을 보게 된다. 그것은 '이모(Imo)'라는 이름의 생후 18개월 된 암컷 원숭이의 특이한 행동이었다. 늘 그랬듯이 다른 원숭이들은 고구마의 흙을 털어낸 후 먹었지만, 이모는 흙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는 새로운 행동을 시도한 것이다. 처음엔 가까이에 있는 소수의 또래 원숭이들만 이모의 이런 행동을 따라 했지만, 점점 더 많은 원숭이한테까지 확산되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의 수가 '100마리'라는 상징적 수치에 이르자, 무리 전체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고지마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원숭이들까지도 유사한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라이얼 왓슨(Lyall Watson)은 이같은 현상을 '100번째 원숭이 효과(The Hundredth Monkey Effect)'라고 명명하였다. 그가 제안한 개념은 이렇다. 어떤 집단에서 특정 행동을 실천하는 개체 수가 일정한 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행동은 사회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가고 심지어 공간적 경계를 넘어 확산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변화와 확산의 상징적 메타포로서 여전히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와 같은 원리는 수없이 반복된다. 사회적 변화와 문화적 유행은 언제나 소수의 남다른 행동에서 시작된다. 처음엔 미약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렇지만, 티핑 포인트를 넘는 순간, 그것은 사회 전체의 흐름으로 바뀌고, 하나의 문화가 된다. 이처럼 모든 변화의 이면에는 늘 '먼저 행동한 누군가'가 존재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도 마찬가지이다. 탄소중립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전환 과제는 거창하거나 어마어마한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가에서 고구마를 씻던 이모의 행동처럼 일상의 작은 실천이 모여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에어컨 온도를 1℃ 높이고, 텀블러를 챙기며,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고구마를 씻는 행동과 같다. 아직은 미약하고 부족해 보여도, 많은 이들의 이러한 행동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주변의 또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작은 실천들이 쌓이고, 시간이 누적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 전체의 인식과 행동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가끔 회의적인 생각을 갖기도 한다. "나의 이 작은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모든 변화는 처음 한 사람의 작은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간다. 혼자 가면 길이 아니지만,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 팬데믹 당시 마스크 착용이 확산된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대부분 불편하다고 했으나, 주변에서 점차 착용자가 늘어나고,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 마스크 착용은 모두의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최근 대형산불과 폭염·폭우 등 기후재난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기후재난을 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탄소중립이다. 모두의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절망을 넘어 희망을 노래하자. '100번째 원숭이' 역할을 누가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조금 전까지 쓰레기를 줍다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그 주인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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