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는 때려 조지기, 검사는 불러 조지기, 판사는 미뤄 조지기, 간수는 세어 조지기, 죄수는 먹어 조지기, 집구석은 팔아 조지기…'이문열 작가의 중편소설 <어둠의 그늘>에 나오는 법조계의 은어 '육 조지기'다. 80년대 초반, 악명 높은 고참이 매일같이 갈궈 조지던 졸병 군인 시절에 읽으며 버텼던 기억이 난다.
***일국의 전 대통령 맞나
세월이 변한 지금, 형사가 범죄자를 때리는 폐단은 사라졌지만 나머지 조지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신속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여 국민의 권리를 지켜 줘야 할 검사와 판사들은 사건이 많아 업무가 가중된다는 핑계로 그들의 조지기를 무기 삼아 시간 끄는 게 다반사다.
교도관의 본업인 재소자 관리는 당연한 업무이고, 스트레스나 불안 심리를 다스리려는 죄수의 먹어 조지기와 집구석 팔아 조지기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 세태는 그대로며 앞으로도 불변 일 것이다. 다만 변호사가 죄수와 죄수의 가족에게 이런 저런 조건을 달아 자꾸 수임료를 올리며 더 많은 돈을 받아낸다는 뜻의 "변호사는 울궈 조지기"가 추가되기도 한다.
검사의 불러 조지기는 전직 대통령도 피하지 못한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이 구속 수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을 조사하기 위해 불렀는데도 출두하지 않자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 특별검찰이든 일반 검찰이든 피의자를 조사하려면 불러 들여야 하고 반복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받아 강제 집행하는 것은 정당한 수사 절차가 분명하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은 망신주기 위해 부르는 것이라며 소환에 응하지 않았고 특검팀이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서울구치소로 갔으나 윤 전 대통령은 수의를 벗고 속옷만 입은 상태에서 독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불응했다고 한다. 이 장면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특검과 윤 전 대통령 측이 상반된 주장을 하면서 공세를 주고받는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말은 양측이 다 일리가 있어 시비를 가리기 어렵다는 속담이다. 윤 전 대통령의 감방 속옷 논란은 어느 측의 주장이 맞는지 아닌지를 따지기 이전에 양측 모두의 언행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에 실패한 뒤 탄핵 당하고 특검에 구속되어 내란 특검, 김건희 여사 특검, 최 해병 특검 등 갖가지 혐의에 대한 특검의 조사에 불려 다니는 피의자다. 중대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라 해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법에 의한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며 피의자가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합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은 장삼이사(張三李四)와는 달리 당당하면서도 절제된 권한 행사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윤 전 대통령은 무능과 무모함으로 정권을 헌납했고 공사석에서 함께 권력을 논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참화를 겪게 만들었다. 검찰총장 출신의 전직 대통령이 잡범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속옷 투쟁으로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해 얻는 법적, 정치적 실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일국의 전 대통령이 맞는지, 그에 부합하는 품격을 요구할만한지 묻게 된다.
***특검인가, 초등생인가
특검의 미숙한 대처와 언론 플레이도 나을 게 없다. 특검 역시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전직 대통령 망신주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특검이 최순실을 등장시켰다. "(윤 전 대통령이)2017년 최순실씨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받아 강제로 구인했다. 똑같이 적용하려는 것일 뿐"이다. 이게 특검이 할 말인가 초등학생의 말인가. 이런 특검이나 윤 전 대통령이나 유치찬란하기는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