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데 콧물이 계속 주르륵 흐른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오전에 돌봄교실 민화 방과후수업을 하고 왔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원터치 패브릭 부채에 아이들이 직접 모란꽃이나 물고기 그림을 그려 자기만의 부채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학교에 도착해 교실 문을 열자, 온몸에 찬 기운이 확 끼쳤다. 전기공사로 수업 시간에 한 시간 정도 정전이 된다고 해서 미리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았단다. 덕분에 덥지는 않았는데 콧물이….
요즘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지난달부터 매일 최고 기온을 경신하며 후텁지근한 마른장마가 이어지다, 보름 전 거대한 물 폭탄을 쏟아내 전국적으로 수해를 입혔다. 그리고는 다시 연일 불볕더위다. 벌써 며칠째 계속되는 열대야와 폭염으로 안전안내 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송된다. 이런 날씨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충분한 수분 섭취와 시원한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도 에어컨을 틀어놓고 거의 집안에서 지내고 있다.
어릴 적에도 한여름에는 무척 더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밥만 먹고 나면 개울로 나가 온종일 친구들과 물속에서 살았다. 바위에 올라가 다이빙도 하고, 물속으로 잠수해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지치면 밖으로 나와 나무 그늘 밑에서 공기놀이나 땅따먹기를 했다. 그러다 더워지면 다시 물로 텀벙 뛰어들었다. 물에 들고 날 때는 맨발로 자갈밭을 밟고 지나가곤 했는데, 뙤약볕에 한껏 달궈진 자갈은 델 정도로 뜨거웠었다. 하지만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흔치 않던 시절,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나면서도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더위를 느끼는 것은 온점(溫點)이다. 온점은 피부나 점막에 퍼져 있으면서 체온보다 따뜻한 온도의 자극을 느끼는 감각점이다. 피부의 감각점은 다섯 가지인데, 통점(痛點), 압점(壓點), 촉점(觸點), 냉점(冷點), 온점의 순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온점의 수가 가장 적다는 말은, 우리 몸이 그나마 더위를 가장 덜 탄다는 이야기일까. 앞으로 최고 기온은 해마다 점점 더 높아질 텐데, 모쪼록 여름을 잘 나는 비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믿는 구석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일전에 재미있는 블로그 포스팅을 본 적이 있다. 한 엄마가 자신의 아이와 함께 냉점과 온점에 관한 실험을 했다. 아이는 따끈한 물이 담긴 그릇과 차가운 물이 담긴 그릇에 한 손씩 넣고, 30초 정도 있다가 손을 빼 동시에 미지근한 물이 담겨 있는 그릇에 넣는다. 처음에 아이는 한 손은 차갑고, 다른 한 손은 뜨겁다고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가움과 뜨거움의 정도가 덜해지는 것을 경험하고, 미지근한 물에 양손을 함께 담갔을 때는, 찬물에 담갔던 손은 따뜻하게, 뜨거운 물에 있던 손은 시원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체험한다. 마지막에 양손을 그릇에 넣은 채 신기해하며 웃던 아이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온점과 냉점은 절대적인 온도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상대적인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 건축가였던 어떤 지인은 요즘같이 더운 날에도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고 지낸다고 한다. 예전에 한여름에 현장작업을 많이 했지만, 견딜 만했다고 한다. 계속 일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그렇게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점점 극한으로 변해가는 기후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해법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도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것일 터. 기온에 맞춰 온점 냉점을 적응시키듯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며 살아간다면 남은 한세상 무난하게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삼복에 콧물 훌쩍이며 인생사 해법을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