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호우가 한차례 지나간 뒤 음성군 한 농원에서 익어가고 있는 복숭아.
ⓒ이수안 시민기자
[충북일보] 엄청난 폭우가 온 나라를 할퀴고 지나갔다.
무너지고, 잠기고, 찢긴 산하의 풍경이 뉴스 화면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그 뒤로 찾아온 맑은 하늘 아래, 붉게 익어가는 복숭아가 농부와 눈을 맞춘다.
긴 가뭄과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이 작은 열매는 묵묵히 제 길을 가고 있었다.
올해는 봄 가뭄이 유난히 심해 밭작물 관리에 어려움이 많았다.
수확기가 오자 반대로 집중호우가 농촌을 괴롭힌다.
비닐하우스가 날아가고, 복숭아는 물러버린다.
자연의 리듬은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다. 수십 년 농사 경험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복숭아 수확기와 겹친 장마는 심한 낙과를 불러온다.
바닥에 즐비하게 떨어진 복숭아를 한쪽으로 밀어내며 길을 내는 농부. 썩어 거름이 될 걸 알면서도, 한 알 한 알 마음 주며 키운 복숭아를 차마 밟지 못하는 것이 농심이다.
노동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일상이 남루해져도 농부는 다시 다음 해를 준비한다.
거름을 내고, 쓰러진 나무를 세운다.
인정머리 없는 날씨, 일손 부족, 육신의 고단함 속에서도 농부는 살아남는다.
그 얼굴에는 어느새 생존자의 표정이 서려 있다.
기후위기 시대, 농사는 더 이상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최전선이다.
농부의 손끝에서 우리의 식탁이 시작되고, 우리의 일상이 유지된다.
이제 농부의 고통을 '남의 일'로 두지 말아야 한다. 함께 기후를 고민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할 때다.
폭우에 씻긴 푸른 하늘 아래, 복숭아는 다시 발그스레 익어간다. 자연의 거친 숨결 속에서도 묵묵히 일어서는 농부들처럼. / 이수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