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무게

2025.07.22 14:57:14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권력을 취하려면 비판과 희생의 과정을 각오해야 한다. 혹독한 검열은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이를 권력자가 감수해야하는 '왕관의 무게'로 비유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왕관을 쓴 자는 편히 쉴 날 없나니.'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의 대사다.

금은보화로 장식하여 권력과 위엄을 과시한 왕관의 무게가 상당히 버겁긴 한가보다.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1953년 대관식을 회상하며 "왕관이 너무나 무거워서 고개를 숙이면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고 했다. 여왕이 영국군주 대관식 때 썼던 '성 에드워드 왕관(St. Edward's Crown)'은 2.2㎏에 달한다. 불평이 나올 만한 무게다. 하지만 모든 왕관이 목이 부러질 정도의 무게는 아니다. 신라시대 금관 중 '금관총 금관'이 0.692㎏, 영국 왕이 대관식 이후 행사에서 쓰는 제국관의 무게는 0.91㎏ 정도로 알려져 있다.

방탄모의 무게와 비교하면 한국군의 방탄모는 1.1㎏, 미군이 쓰는 신소재 케블라로 만들어진 PASGT 헬멧 방탄모는 1.5㎏ 정도다. 중세의 철투구는 무려 3㎏에 달했다는데 이런 철모의 무게를 불평 없이 견딘 일반 병사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고 여왕이 진저리를 쳤던 왕관의 무게는 물리적인 무게라기보다 막중한 책임의 무게일 것이다.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면 그보다 더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왕관의 무게'에 담겨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가 왕관을 쓰게 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상당수의 왕관은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인간의 머리에 씌워진다. 그 결과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목 디스크의 아픔을 얻거나 아예 목이 꺾이는 불행을 맞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결국 철회했다. 거의 손에 잡았다고 생각했던 왕관을 놓친 이진숙의 심경은 입에 물었던 사탕을 뺐긴 아이처럼 황당하고 억울할 것이다.

이진숙은 논란이 된 다수의 논문 표절 의혹 중 제자 논문 가로채기 의혹에 대해 '언론 보도 내용은 학계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결론"이라며 특히 강하게 반발했다.

'자신이 국가연구 프로젝트를 수주, 연구 책임자로 수행했던 연구들이므로 자신이 학생 학위논문의 제1 저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공계의 관행'이라 주장한 이진숙의 해명은 청문회의 가장 얼척 없는 궤변이었다.

학계의 장황한 반박보다 '자신이 돈을 끌어왔으니 자기가 제1저자라고 우기며 관행임을 내세우는 황당한 발상'이라 지적하는 일반 대중의 지적들이 더 뼈를 때린다. 이진숙의 주장대로라면 연구비를 제공한 공무원이나 공기업 사장 등을 모두 제1저자로 등재한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대통령이 교육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면서 이진숙은 장관 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명을 받고 임명되지 않은 세 번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됐다. 첫 번째 철회됐던 박근혜 정부의 김명수 후보자는 제자가 쓴 논문을 자신의 연구 결과로 학술지에 게재한 사실 이 밝혀져 지명 철회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김인철 후보자도 자신의 제자가 작성한 논문을 짜깁기하여 정책학회보에 제출, 연구비까지 받은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자녀 논문공저자 및 연구원 아빠찬스 의혹, 방석집 논문심사 등의 비리가 드러나자 김인철 후보자는 청문회 전 자진 사퇴했다.

자진사퇴를 결정하지 않고 끝까지 논란의 폭풍을 견딘 후보자는 보통 굳센 사람이 아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당찬 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움츠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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