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연원시장 5일장 대표가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박운경 시민기자
충주시 연수동 연원시장 5일장엔 유일한 생선가게가 있다.
지긋한 인상의, 딱 봐도 인심 좋을 것 같이 생긴 이태호(59) 대표가 연원시장 5일장이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생선을 팔고 있다.
이 대표는 어머니를 어렸을 때 여의고 아픈 아버지 밑에서 친척들의 도움으로 자랐다고 한다.
어려운 살림에 지친 그는 중2 때 무작정 기차에 몰래 타 서울로 상경을 했다. 노가다 판에서부터 디스코텍 웨이터까지 안해본 게 없었다고 한다.
17세에 드디어 그의 첫 가게 '태호네 야채가게'를 열었지만 어린나이에 차린 가게는 금방 망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또래들은 교복 입고 학교에 갈 시간 그는 사회에서 만난 몇 살 많은 형과 함께 트럭에 야채를 실고 이곳저곳에서 채소를 팔았다.
"나는 꼭 고향에 가서 성공하고 말거야"라는 다짐으로 이 악물고 버텨 온 세월 끝에 1990년 말 충주에서 가장 큰 디스코텍을 열었다.
무조건 잘 될 것만 같았다고 한다. 융통한 돈으로 서울에 버금가는 큰 홀과 무대들을 꾸몄고 주머니가 현금으로 두둑해졌다.
그러나 1997년 IMF가 터지고 세상은 급격히 얼어 붙었다. 빚으로 시작한 그의 가게도 얼어붙었다.
또다시 그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어느덧 아내는 곁에 없고 어린 아들만 그를 쳐다보고 있다.
그는 다시 시작했다. 장터에 나가 좌판에서 생선을 팔았다. 텃세가 심했던 장터에서 그는 특유의 오뚜기 근성으로 일어섰다.
장사만 40여 년 넘게 생활을 하는 이 대표는 어린나이에 장사를 하면서도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했다.
주변에 어려운 분들에게 채소를 전했고 생선을 팔 때는 양로원, 요양원 노인들에게 그의 생선을 전했다.
그의 착하고 오뚜기 근성이 있는 마음이 통했을까?
5일장이 되면 단골손님들이 마실 나오듯 나와 그의 생선을 따져보지도 않고 산다.
깨끗하게 비늘을 손질해주는 그의 솜씨! 오일장이지만 단골손님에게 질좋은 생선을 주겠다는 그의 진심.
덕분에 그의 아들은 바쁜 아버지 밑에서도 착실하게 커서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기 몫을 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저는 이제 남부러울게 없어요. 저의 아들이 잘 자라줬고 이제 단골 손님들도 믿고 찾아주시고 더없이 행복합니다. 노후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주변에 어려운 분들을 보살피며 그렇게 살렵니다."
역경을 이겨낸 이 대표의 만개한 그의 웃음 속에서 행복을 엿본다. / 박운경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