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나 탄소중립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주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기후 문제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이 말에는 어딘가 막연한 거리감과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마치 기후 문제는 일부 기후과학자들이나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특정 분야의 사람들이 다뤄야 할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는 단순히 과학적·기술적 차원에 국한된 특정 분야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삶의 방식 전체에서 비롯된 총체적인 위기이다. 따라서 그 해법 역시 모두의 '삶의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서양 철학의 '기계론적 자연관'에 기반하여 자연을 착취와 정복의 대상으로 취급해 왔다. 산업화 이후 도시가 팽창하면서, 에너지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과소비에 무감각해진 우리의 일상은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해 왔다. 주택과 빌딩의 과도한 냉난방, 밤낮없이 운행되는 다양한 운송수단, 생활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플라스틱과 음식물 쓰레기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찬란한 문명의 이면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가 되어 지구환경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이제 곧 나의 문제이며, 우리의 익숙한 일상에서 비롯된 공통의 문제이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 매일매일 모이다 보니, 거대한 기후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어떤 전문가가 필요한가? 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정치인은 정치를 통해, 기업가는 ESG 경영을 통해, 교사와 학생은 학교 교실에서, 예술가는 무대에서, 농민은 논밭과 축사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기후위기의 문제가 특정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각자 맡은 해당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기후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대학교수나 박사 연구원만을 기후 전문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일상 속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자원을 절약하면서, 생태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처럼 탄소중립적인 삶으로 전환하려는 사람이 오늘날의 진정한 기후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전문성은 자격증이 아니라 '환경 감수성과 탄소중립 실천'에서 비롯된다. 내가 어떤 말과 생각을 하고, 무엇을 소비하며, 어떤 자세로 일하는지, 어떻게 쓰레기를 버리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 가는지… 이 모든 '삶의 습관'이 곧 기후위기에 대한 실질적인 응답이 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은 실천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하지만 기억하자. 지금 지구를 위협하는 것도, 바로 그 '작고 사소한 행동들'의 누적이었다.
그렇다면 해답 역시 그 작고 사소한 실천들로부터 나오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해야 하니까' 하는 타율적 실천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게 되는 자율적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의무가 아닌 자긍심으로 느껴야 비로소 지속 가능한 전환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시작된 변화는 곧 서로를 잇는 거대한 기후 네트워크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전환의 시대에 서 있다. 국가정책도 중요하고 첨단 과학기술도 필요하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내 자리'에서 비롯된다. 누군가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기쁘게 실천하는 변화. 그 변화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이렇게 외쳐보자. "내 자리에서 나는 진정한 기후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