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꽃을 피운다는 표현은 인생의 가장 젊은 시절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지만 실제로도 과연 그럴까.
계절마다 그에 어울리는 꽃이 피듯 우리네 인생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시절에 걸맞은 꽃이 피기 마련이다.
충주시 읍면동 치매예방 활성화 사업의 일환 '기억꽃 피우기' 사업을 진행하며 자연스레 떠올린 생각이다.
앙성면 하율마을에서는 지난 3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기억꽃 피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치매 예방을 위한 인지활동의 일환으로, 단순한 교육을 넘어 어르신에게 따뜻한 위로와 활기를 불어넣고자 시작했다.
참여하시는 어르신 다섯 분은 모두 80세가 넘은 고령자이지만, 코로나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경로당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시던 분들이 지금은 목요일마다 들뜬 마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손가락 체조로 간단히 몸을 푼 후 색칠 활동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화투 도안처럼 비교적 친숙하면서도 간단한 색칠로 활동을 시작했다.
친숙한 그림에 각자 좋아하는 색을 입히며 작품을 완성해 가는 동안, 어르신들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도안을 들고 "나 어때요"하고 자랑하시는 모습에 함께한 이들 모두가 박수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가 화가이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경험이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게 만들었다.
어르신들의 작품은 가족들에게도 큰 감동을 줬다.
어떤 분은 아들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가 "어머님이 화가이신 줄 알았다"며 감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또 다른 분은 자녀가 "엄마가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새 색칠책을 사드렸다고 한다.
가족의 관심과 칭찬은 어르신들에게 또 하나의 꽃망울이 됐다.
화투 도안을 마친 후에는 꽃 도안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동안 익힌 손놀림 덕분인지 어르신들은 "이제는 어렵지 않다"며 당당하게 색연필을 잡았다.
프로그램 중간에는 '내 마음 읽기'와 '감사 표현하기' 활동도 함께 진행했다. 평생을 농사와 가족 돌봄에 바치며 정작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던 어르신들에게 이 시간은 스스로에게조차 숨겨왔던 마음속 이야기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새로운 경험이 됐다.
오랫동안 봉인돼 있던 꽃씨가 피어나듯 따뜻한 감정이 물밀듯 몰려와 어르신들뿐 아니라 함께 했던 우리들의 마음까지 적셔줬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어르신들의 작품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던 일이다.
자신이 만든 그림이 책 속에 실린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거 내가 했어요"라고 묻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책을 손에 들고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 눈빛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본다면 인생의 꽃은 어느 계절에도 핀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으리라.
작은 마을의 조용한 변화는 어르신들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나아가 치매 예방이라는 큰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읍면동 중심의 치매예방 사업이 단순한 보건서비스를 넘어, 어르신들의 마음과 삶에 따뜻한 꽃을 피우는 과정임을 몸소 느끼며, 앞으로도 지역 곳곳에 이런 꽃들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