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의 장안면은 보은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중앙에 금강 수계인 삼가천이 관류하며 북동부는 속리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북부에 있는 말티고개를 통해 보은읍과 속리산이 연결되며 1893년 동학 보은 집회 장소이기도 하다. 장안면의 면소재지는 장안리이며 서원리, 개안리, 황곡리, 봉비리, 불목리, 오창리, 장재리, 구인리 등 9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속리산의 밑이 되므로 속리면(俗離面)이라 하였는데 1947년 2월 7일 행정구역 분구(충청북도령 제36호)에 의하여 내속리면과 외속리면으로 분리되었으며 2007년 10월 1일 보은군 조례 제1902호(2007.8.13.)로 내속리면을 속리산면으로, 외속리면을 장안면으로 면 행정구역 명칭을 변경하고 외속리면 하개리를 장안면 개안리로 변경하였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장안(長安)이라는 지명은 옛날 중국의 한(漢)나라가 장안에 도읍을 정한 뒤 수나라, 당나라 때까지 도읍으로 자리 잡은 도시다. 중국을 섬기는 모화사상(慕華思想)에 물든 조선의 유학자들이 장안이란 말을 들여와서 '서울 장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데서부터 '나라의 수도'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이후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가 되어 '장안의 화제'처럼 관용어구로 쓰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지역에 '장안'이라는 지명이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의 장안면을 비롯하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장안동,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동,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경기도 평택시 장안동,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등에 쓰인 장안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유래는 무엇일까?
보은군 장안면의 '장안'은 관내의 장내리(帳內, 場內, 帳安, 장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장내리는 본래 보은군 속리면의 지역으로서 조선 시대에 장마 안쪽이 되므로 장안 또는 장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평리 사각면의 구인리를 병합하여 장내리라 하고 1947년 외속리면에 편입되었다. 장내리는 외속리면의 면소재지이며 중심지이므로 2007년 10월 1일 보은군 조례로 외속리면을 장안면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전해오는 설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의 개국을 예언했던 도승이 장안을 지나다 들어와 장안 뒷산 형세를 보고 옥황상제가 장막을 치고 옥좌에 앉아 있는 형상이라 해서 예부터 마을 이름을 한자로 '장막 장(帳), 편안할 안(安)' 자를 써서 장안(帳安)이라고 불리어 왔다고 한다. 또한 장안 뒷산의 형태를 한자로 풀이하면 '수풀 림(林)'자로 생겼다고 해서 장안에 임씨 성씨가 살면 장안 부자로 이름이 난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이처럼 수도인 한양을 장안이라 부르는 일반 명사와 음이 같아서 동학란이 일어날 때 동학교도 취회시 '서울 장안이 장안이냐 보은 장안이 장안이다'라는 민요가 불리웠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지명에서의 장안은 수도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인 장안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여러 지명에 쓰인 장안이라는 말의 원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지명에 많이 사용되는 '장'이라는 지명 요소는 산이라는 의미의 '잣'이 변이된 것이며 '안'은 '안쪽'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즉 '잣안'이 '장안'으로 변이된 것으로 한자로 표기할 때 '장'은 소리만 표기하고 '안'은 의미를 표기하여 '장내(帳內, 場內)'가 된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장내(帳內,場內)'라는 한자로 표기하였다가 다시 옛 자연 지명인 '장안(帳安)'이라고 한자로 표기하여 사용하게 된 것은 수도 서울을 가리키는 '장안'이 '장내'보다 더 일반적이고, 더 품위 있는 말로 생각되었기 때문으로 추정이 된다.
그리고 이 지역에 장터라는 자연 지명이 있는데 전에 장이 섰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지만 산골짜기에 장이 섰다고 보는 것보다는 '산에 있는 땅'의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옛날에 불리던 '장마'라는 지명도 '산 마을'의 의미로 본다면 이들이 모두 '장안(산의 안)'의 유래와도 연계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