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승우정은 정승우 대표가 자신있게 소개하는 한우 코스요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이곳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인원은 단 10명. 혼자서 8가지 코스 요리를 순서대로 제공하기 때문에 최적의 동선을 위해 주방을 바라보는 바 테이블만 준비돼있다.
손님들이 선택하는 메뉴가 아닌 승우정의 코스를 정해둔 이유는 음식을 먹는 것에도 엄연한 순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료 중심의 요리를 정해진 순서대로 선보이면서 음식의 기승전결을 만들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정해둔 전체 식사 과정을 손님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계한 조리법과 플레이팅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기 전 한입으로 입안을 즐겁게 하는 아뮤즈부쉬부터 요리다. 샐러드와 에피타이저 등 순서대로 전해지고 비워진 접시는 고기를 먹기 위한 준비 과정의 일환이다. 입 안을 가시고 입맛이 돌게 하는 요리라고 가볍게 만들지는 않는다. 메인 메뉴를 제외하고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이다. 제때 맛이 오른 재료를 중심으로 메뉴가 바뀐다. 문어, 갑오징어, 관자, 대창 등 다양한 식재료가 여러 조리법을 거쳐 테이블에 오른다. 친숙한 재료의 이색적인 변신이 미식의 세계로 이끌어줄 마중물이 된다. 재료를 세분화해 적어둔 메뉴판은 요리를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안내서이기도 하다.
ⓒ승우정 인스타그램
승우 씨가 이곳에서 스테이크 요리로 선보이는 한우는 안심과 채끝이다. 청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드라이에이징 기법으로 숙성한 고기다.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온도와 습도 조절 기능 외에 풍향과 가습 기능을 더해 특별히 제작한 숙성고에서 숙성의 묘를 살린다.
정통 건조숙성방식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한 서울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가장 확실하게 배운 것은 음식에 대한 철학이다. 진짜 숙성만이 진짜 감칠맛을 고기에 입혔다. 숙성 후 버려지는 양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첨가하는 가게들의 결과물은 승우 씨가 느끼기에 만족스럽지 못했다. 20대 초반 우연히 맛보고 알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진 드라이에이징 고기 특유의 맛은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승우정에서 손질한 안심은 15일에서 20일, 채끝은 20일에서 40일의 숙성 시간을 보낸다. 각자의 시간으로 부드러워진 육질과 풍미는 다시 승우씨의 손에 맡겨진다. '굽는 것'을 하나의 장점으로 내세울만큼 굽는 일에 일가견이 있는 그다. 재료에 따라 익힘 정도 달리해 숯불 위에서 익힌 모든 재료는 각각 최상의 맛을 찾아간다.
네 번 태운 참나무 숯은 고기와 어울리는 것으로 선별해 고른 장치다. 잘 숙성한 고기가 숯과 만났을 때 고기 자체의 맛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여겨서다. 손질하고 고기를 굽는 과정을 바로 뒤에서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안심과 채끝의 매력이 한껏 끌어올려진 스테이크에 곁들이는 소스는 두 종류의 소금뿐이다. 시간으로 양념한 고기의 감칠맛을 온전히 느껴보라는 뜻이다.
안심의 부드러움과 채끝의 고소함을 만끽한 뒤 접할 수 있는 한식 기반의 메뉴도 재미있다.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늘 건강한 음식을 고민하던 어머니의 비법들을 가져왔다. 고기와 마찬가지로 시간과 정성으로 익힌 동치미나 직접 만든 식혜를 얼려 구운 잣을 곁들인 식혜 그라니타 등이다. 구수하게 끓인 누룽지에 대파오일과 대파 튀김, 영양부추 등을 곁들인 식사도 산뜻하고 든든한 마무리다.
다시 찾아온 손님에게도 새로운 감동을 주기 위해 메뉴에 대한 연구가 계속된다. 각 나라의 요리사들이 쏟아내는 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해석을 곁들여 다시금 승우 씨의 것으로 만들기 바쁘다. 여러번의 수정을 거듭해 완성된 정승우 대표의 요리들이 잘 구운 고기와 가장 어울리는 형태로 미식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 김희란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