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영화의 흥행으로 보는 시대의 불안

2024.03.12 13:55:55

한영현

세명대학교 교수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2024)의 흥행이 심상치 않다. OTT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의 공격적인 시장 확장과 투자로 인해 요즘 극장가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일은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영화라도 쉽지 않다. 얼마 전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2023)이 천만 관객을 넘어선 게 화제가 된 것도 그런 이유가 크다. 오컬트 장르에 속하는 <파묘>가 개봉했을 때 이런 흥행을 예상한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른바 돈 많이 들인 대작 액션이나 판타지, 범죄 느와르처럼 대중의 구미를 당기는 장르 외에는 흥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컬트 장르는 과학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 즉 악령이나 영혼 등을 다루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관을 좋아하는 일부가 아니고서는 대체로 대중에게 호소하지 못한다. 영화 <파묘> 또한 오컬트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왜 이 작품이 이토록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된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화려하고 신선한 퍼포먼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주연과 조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은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내러티브의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마저 대중이 기꺼이 감내하도록 만든다. 여기에 '파묘' 이후 벌어지는 악령과의 사투 과정에서 행해지는 다채로운 제의와 굿의 퍼포먼스는 극의 재미를 극대화하고 오컬트 장르의 독특한 세계관을 대중이 흥미롭게 받아들이도록 해 준다.

그런데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불시에 일상을 침범하는 위험과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컬트 장르로 정교하게 치환하여 지금 현재 한국의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의 집단 무의식을 건드렸다는 것에 있다. '험한 것'은 존재의 근본이 되는 땅의 정기를 막은 채 엄청난 자본가의 신체 밑에 도사리고 있던 죽음의 정령이라는 점에서 '자본'의 실재적 성격과 닮은 데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면서 일상을 좌지우지하고 불시에 누군가의 삶에 파괴적인 힘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말이다. 그런 '험한 것'을 돈을 좇던 풍수사와 장의사 그리고 무당이 온 힘을 다해 막아낸다는 설정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제법 그럴 법하다. 돈의 추구가 가져오는 피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결국 그것을 추구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풍수사와 장의사, 무당은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와 디지털 최첨단 시대 변화에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존재들라는 점에서 급격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중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압도적 신체와 위협적 힘으로 무장한 '험한 것'은 단지 대중의 '두려움'과 '공포' 자체의 감각적 경험을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시대가 낳은 '불안'과 '공포'를 보여 주는 장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와 인플레 그리고 급속한 시대 변화와 치열한 경쟁 체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 의식의 부재 등 현재 한국 사회에 퍼져 있는 여러 모순과 문제들은 대중의 시대적 불안과 공포를 심화시킨다. 이러한 불안과 공포는 엄청난 괴물로 혹은 악령의 모습으로 언제든 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대중이 느끼는 이러한 감정을 판타지적 방식으로 해소해 준다.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 <파묘>의 흥행은 사회에 퍼진 시대적 불안과 공포를 몰아내고 일상의 평온을 되찾는 일이 그만큼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간절한 희망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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