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이 힘드신가 봐요

2023.06.04 15:09:39

최한식

수필가

-결혼식장에 왔습니다. 결혼을 앞둔 신랑과 잠시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싱글벙글 입 꼬리가 귀에 닿았네요. 그렇게 좋은지요?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한 번 어려움이 있었지만 만난 지 일 년 만에 결혼하는 서른두 살 신랑입니다."

-신혼집은 준비하셨는지요? 결혼 후 가정의 경제계획은 어떻습니까?

"신혼집은 부모님의 도움과 그간 모아둔 돈을 합쳐 전세로 마련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할 작정입니다."

-신랑 나이가 적지 않은듯한데 자녀계획이 쉽지 않겠습니다.

"민감한 부분입니다. 둘의 생활에 워낙 영향이 큰일이어서 의견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출산하면 우선은 아내에게 휴직이 필요하고, 경제적 지출이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저도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아내나 저나 한 해라도 동료에게 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어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자녀를 갖지 않는 경우도 생각하고 계신가요?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자녀를 갖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자녀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우리 살기도 이렇게 팍팍한데 다음 세대라고 만만할까요?"

-그래도 부모님이 기대하실 테고 자녀가 있어야 가정에 활력이 있지 않을까요? 세대를 이어간다는 의미도 있고요.

"자녀가 부모를 위한, 부모의 소유물은 아니지요. 엄밀히 말하면 부모를 위해서는 없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결혼이 부부를 힘들게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나요?

"전혀요. 어떻게 하는 결혼인데, 그럴 리 없어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몸과 마음을 합치는데 서로에게 행복이 되어야지요."

-결혼이 신랑에게는 날개가 꺾여 땅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고, 신부는 남편과 자녀와 시댁에 꽁꽁 묶이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아닙니다. 아니길 바랍니다. 신랑에게는 든든한 버팀목, 평생 응원군을 얻는일이고, 신부에게는 자신과 함께 할 평생 내편을 얻는 일입니다."

-연애 때 장점이 결혼하면 단점이 된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점점 짜증나게 하지 마시고 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점검을 하고 손님을 맞으러 나가야 할 시간입니다."

-결혼 전 신부의 춤 솜씨는 많이 놀아본 증거로, 똑 부러지는 성격은 시댁과의 충돌의 씨앗, 뭐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요?

"미리 남의 일이 잘 안되기를 바라는 것 같네요. 신부는 춤은커녕 노래도 잘못하고요, 연애 기간 싸움 한 번 안한 순한 성품입니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소극적 성격에, 자기 주관이 분명하지 못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시댁에 의견전달이 잘 안되고 신랑이 그 사이에서 고생할지도 모르고요.

"그러고 보니 늘 안 좋은 쪽으로만 되길 바라시네요, 결혼생활이 몹시 힘드신가 봐요. 뭔가 자신에게서 부족함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혼자 살면 전혀 의견충돌이 없고 싸울 일도 없지요, 긴 세월을 다르게 살아온 이들이 만나면 부딪치는 게 당연해요. 자기 의견을 꺾는게 쉬울 리 없겠지요.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날, 감정이 폭발하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

-한 마디만 더 할 게요, 신혼집은 시가와 처가 중에 어느 쪽에 가깝게 잡았나요, 누구 의견을 따른 건가요? 처가 쪽이라면 기 펴고 살 생각 아예 처 음부터 접는 게 현명할 겁니다.

"나는 어디라도 좋았고요, 아내가 편할 것 같다고 해서 처가에 가깝게 정했을뿐입니다."

-잘 했네요, 자녀도 낳고 원하는 일도 이루고 부자 되어 잘 살기 바랍니다. 가끔내 말들이 생각날 때가 있을 겁니다. 평생 기억에 남는 신나는 결혼식이 되길 기원합니다.

접수처가 준비되고 손님맞이가 시작되나 봅니다. 신랑과 많은 대화를 나눴으니 신랑 아버지 만나 축하하고 식권 받아 식사해야겠네요. 신랑 아버지가 학교 동창이거든요. 요즘 결혼식은 보고 듣고 할 게 별로 없어요. 다 비슷하니까요. 오늘 안 좋은 얘기 한 게 있다면 안 맞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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