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그려낸 천장 곰팡이 구름 아래로
그늘 없이 날아가는
어린 딸애의 비행기 벽화는 그냥 두고 간다
죽자고 올라서던 베란다 난간 위에 뜨던 달
그건 어차피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있던 거다
부엌과 화장실의 근접, 강장동물처럼
구토와 배설을 식음과 혼돈했던 버릇은
잘 묶어 문가에 내논다
밤마다 여자의 얼굴에 푸른 절망을 새기던
304호 남자의 망치는 돌려주었나
짐을 다 싸고
306호의 늙은 여자가 준 무장아찌에
짜장면을 시켜
아들이 다녀간 날
요양원으로 떠난 그녀를
빈 그릇으로 내놓고 간다
그렇게 떠난다 그런데도
미어질 듯 용달은 흔들리고
집은 부동산이 아니다
―시 「이사」 전문
이 시는 적잖은 전세살이를 한 필자가 한때 이사를 하면서 썼던 글이다. 전세를 살면서 늘 전세보증금을 잃을까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난다.
근래 전세 사기로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았다는 가슴 아픈 기사를 벌써 여러 번 읽었다. 사태가 커지자 며칠 전 전세 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법안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정부가 경매와 공매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즉, 피해 보증금 보전에 있어서 세입자가 살던 집이 경·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앞서 배당받을 수 있는 금액인 최우선변제금을 정부가 최장 10년간 무이자 대출을 해 주겠다는 것이다. 최우선변제금 범위를 초과하면 2억4천만 원까지 1.2~2.1%의 저리로 대출을 지원한다고 한다.
또한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경·공매를 대행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용은 정부가 70%를 부담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적용 요건을 확대한 특별법은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고 한다.
이런 특별법 제정안에 대해 전세 피해자들은 마냥 반기고 있지는 않았다. 전세 사기나 깡통전세는 결국 대출 규제를 풀고 세제 혜택을 주어 한 명이 여러 채를 소유하는 것을 부추긴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생긴 피해인데 피해자 각자가 대출을 받아서 해결하라는 특별법은 결국 그 책임을 정부가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 중에는 다가구 주택의 피해자가 많은데 이들은 우선매수권을 사용한다 해도 그 금액이 커 건물 전체를 매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기다 다가구주택은 보증보험 가입도 까다롭다. 모든 임차인의 서명과 임대인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거권은 헌법적 기본권이다.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집 투기를 방치하는 정책으로 시민의 주거권을 침해하는 형국이다. 더불어 전세 사기를 꼼꼼하게 조사해야 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저출산 문제라든지 결혼 장려 측면에서 보자면 최근 전세 사기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젊은 연령층인 것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리고 양극화가 심해진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춰보면 전세 사기 문제를 겪는 것은 서민들일 것이다.
일이 발생한 다음에야 대책을 강구하는 급급한 정책보다는 서민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집 마련을 돕는 선제적인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어쨌든 국회를 통과한 전세 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 시행으로 더 이상의 가슴 아픈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힘겹게 이사를 하면서도 내 집을 갖는다는 희망 하나로 이사차는 늘 경쾌하지 않았는가. 집은 부동산이 아니다.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집은 눈물과 꿈과 행복이 오롯이 집약된 부동산 이상의 것이다. 집은 삶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