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의'와 조조

2023.02.02 17:30:47

박영록

한국교통대 중국어전공교수

'삼국지'는 진수가 쓴 역사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나관중이 쓴 소설인 '삼국연의'가 '삼국지'로 통용된다. '연의(演義)'란 역사를 소설화 한 문학장르이다. 그런만큼 '삼국연의'에는 문학적으로 윤색된 부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제갈공명이 처음 세상에 나와 화공을 폈다고 하는 박망파 전투는 사실 유비가 주도한 전투로서 당시 유비와 제갈공명은 아직 만나기도 전이었다. 또 적벽대전을 앞두고 안개 낀 새벽에 짚단 실은 배를 이용해 조조군의 화살 십만 개를 받아 왔다는 것도 손권의 일화를 각색한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삼국연의'에서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작업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와 함께 오늘날 상식화 되고 있는 주장이 "조조는 위대한 정치가인데 '삼국연의' 때문에 억울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나관중이 오히려 억울해할 일이다. 왜냐하면 '삼국연의'에서 실제 역사와 비교할 때 플러스, 마이너스 없이 가장 객관적으로 묘사된 사람이 조조이기 때문이다. 만약 조조가 손해를 본 것이 있다면 제갈량이나 관우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미화해 주지 않아서 상대적 손해라는 정도인데, 정작 업적을 도둑맞은 손권이나 주유 같은 동오 측 인물들이 볼 땐 배부른 고민일 따름이다. 그런데 왜 조조는 나쁜 사람으로 묘사된 느낌이 남는 것일까? 이것은 바로 시대 상황 때문이다. 조조는 분명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훌륭한 리더임은 사실이나 그가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니었던 것도 분명하다. 그의 아들이 세운 위나라가 좀 오래 갔다면 그나마 조조를 미화할 시간이 있었을 터인데, 위나라, 진나라가 연이어 망해버리니 조조는 그냥 군주를 억압하고 황후를 죽인 나쁜 신하라는 이미지만 남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조조가 죽은 지 1천700년 뒤에 신해혁명으로 왕조 체제가 무너지자 조조에게 새로운 역사평가의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조조는 바로 신시대가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상품성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정치, 군사적 능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고, '삼국연의'를 통해 유명세도 확보되어 있으니, 조조를 재평가하면 과거의 봉건적 인식까지 함께 비판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그래서 유행하게 된 것이 나관중 때문에 간신으로 묘사되어서 그렇지 사실 조조는 훌륭한 위인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아무리 시대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마치 바람에 풀이 한쪽으로 눕듯 이렇게 대세가 바뀔 수 있을까? 사실 그 바람의 원동력에는 마오저둥(모택동)이 있음을 알면 답은 간단하다. 마오저둥은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대장정 기간에도 수시로 '삼국연의'와 조조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2010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그가 조조에 대해 평가한 것이 32회라 한다. 특히 1958년 우한(무한) 좌담에서는 조조에 대한 재평가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1959년에 ''삼국연의' 재평가 하기' 열풍이 부는데 그해 1월~7월 사이에 관련 글이 150편이나 발표될 정도이다. 그러다 보면 과도한 일반화도 보이게 마련이다. 가령 지금은 유비ㆍ관우ㆍ장비의 도원결의는 없었다는 것이 일반화 되어버렸는데, 이것은 옳지않다. 진수 '삼국지'의 '관우전'에는 복숭아 밭이라곤 안했지만 "誓以共死(서이공사: 함께 죽기로 맹세하다)"라하여 어쨌든 어떤 결의 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문구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우전'을 보았으면서도 이 문구는 무시하는 것이 신기할 노릇이다. 물론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고, 역사적 인물을 재평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답이 정해져 있다면 학술적으로 타당한 태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치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혹시 미리 답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닌지 항상 돌아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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