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적을 꿈꾸며

2022.10.03 16:02:54

지정구

한국은행 충북본부 기획조사팀장

'Making a Miracle(기적을 이루다)'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루카스 교수(Robert Lucas, 現 시카고대)가 1993년에 발간한 유명한 논문이다. 논문은 인구, 1인당 국민소득, 도시화 정도가 비슷했던 1960년대 초반의 한국과 필리핀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그 후 30년간 필리핀은 1인당 국민소득 연평균 1.6%의 성장에 그친 반면, 한국은 연평균 6.2%의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음을 보인다. 논문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성장의 원동력은 인적(人的) 자본의 축적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인물을 소개한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머 교수(Paul Romer, 現 뉴욕대)다. 그는 박사 학위 후 로체스터대학에 임용됐지만, 3년이 넘도록 논문을 한 편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교수회의에서 재임용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오갔고 일단은 경고를 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학과장이었던 일반균형이론의 대가 맥킨지 교수(Lionel Mckenzie)가 "나는 폴(Paul)이 평범한 논문을 양산하는 학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 조금 더 지켜보자"고 정리했다. 드디어 로머 교수는 임용된 지 5년만에 연구개발(R&D)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내생적(endogenous) 성장 이론을 발표했다.

두 연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이다. 학교, 직장·연구소에서 '지식'을 전수·배가시키고 창조하는 투자가 경제성장을 이루는 핵심요소라는 것이다. 물론 기계설비나 건물 같은 물적(物的) 자본의 투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물적 자본에 의한 성장은 수확체감(diminishing returns)의 법칙이 지배하기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 수확체감이란 투입요소가 한 단위 추가될수록 이로 인해 늘어나는 추가적인 생산량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 한 대를 들여놓으면 기존보다 자전거를 10대 더 만들 수 있었는데, 이후 기계 한 대를 더 추가하면 자전거 생산량은 7대만 더 늘어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물적 자본 투자에 의존하는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종국에는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한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반면, 교육이나 R&D 투자에 의해 축적된 인적 자본은 당해 연도 GDP의 생산요소로 사용되는 동시에, 다음 연도에 사용될 인적 자본의 추가적인 형성에도 사용된다. 즉, 교육과 R&D의 제도적 요소만 잘 갖춰져 있다면, 인적 자본은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증식하기에 경제 스스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케 된다. 때문에 이를 내생적(endogenous) 성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생적 성장이론이 이제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는 것일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5%를 넘던 우리나라 성장률이 현재는 2% 초반까지 하락했다. 인구 변화를 고려한 1인당 경제성장률도 최근 2% 수준이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학원에서 과거 어느 세대 못지않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말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중에 하나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적 자원과 현 교육계가 양성·배출하는 인적 자원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과거에는 선진국을 좇아가는 모방형 인재양성이 필요했지만, 경제 고도화기에는 선진국과 경쟁 또는 추월하기 위한 창조적 인재양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선진 경제에 편입된 우리나라의 교육은 오히려 과거 30~40년 동안 유지돼온 교육 방식과 내용을 그대로 답습, 아니 더욱 공고화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생이 고교 2학년 수학을 선행해 배우고, 현 입시체계에서 창의성은 학생의 진학에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충북도 수도권 규제 및 제조업 투자 노력의 결실로 전국 최상위권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속성이 낮은 물적 자본 투자에 의한 성장이고, 여전히 학교에서는 모방형 인재만 양성되고 있다. 우리 교육은 획기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할 때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한 'A Miracle Again'이라는 논문이 언젠가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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