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 낭독하기

2022.09.27 17:34:31

정성우

청주 단재초 교사

가수 유미리가 갖고 있는 '젊음의 노트'에는 꿈과 사랑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어린 사람은 그 꿈을 사랑했고, 젊음이 지난 사람은 소리 없이 흔들리는 노스탤지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가 그랬다. 이등병의 편지가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로 이어지던 서른 즈음에 사랑하는 딸을 두고 떠나버렸다. 가을하늘에 나도 편지를 쓴다.

대학 다닐 스물 즈음에는 '당신도 울고 있네요'와 '사랑했지만'을 자주 불렀다. 대답 없는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이어서 부르면 어제 내린 빗물이 어머님의 눈물과 구별되지 않았다. 파란 하늘에 그려본 이름 모를 선녀가 '교대인이여 깨어나라'라고 외친 서초동 남태현 열사로 변했다. 살아 있음은 축복이었다.

내 나이 마흔 즈음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에게 '서른 즈음에'를 가르쳐 주었다. 아빠 말을 잘 듣던 귀염둥이는 추석 명절에 모인 친척들 앞에서 감정을 잡고 불렀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뜨고 갈바람이 천천히 불어오면, 점점 멀어지는 기억을 붙들지 못하고 있는 나만이 세상에 홀로 있었다. 청춘은 머물러 있지 않았다.

혁신학교 졸업식을 준비할 때는 항상 주제곡을 선정하고 그 분위기에 취해 행사를 진행했었다. 내 나이 쉰 즈음에는'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선정하였다. 특히 가수 정인과 함께 부른 것처럼 편집된 노래가 맘에 들었다. 졸업식장은 학생들을 축하하는 가족들로 꽉 찼고 담임 교사의 마음은 텅 비어갔다. 애증의 일 년이 추억으로 묻힌 교실에 남아 어둠이 내릴 때까지 들었다. 애절한 두 남녀의 목소리가 잊어야 할 것과 기억해야 할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는 먼지가 흩날리는 흐린 가을 거리에 항상 홀로 서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햇살이 눈부신 곳에서 봄날에 만난 사람이 보인다. 훈련소로 나설 때 풀 한 포기에도 꿈을 주었던 스무 살의 온기가 가득한 사람이다. 통기타를 메고 하모니카 전주가 거리에 퍼지면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걸어오고 있다. 터질 듯한 울음을 꽉 물고 있다가 또렷한 발음으로 천천히 노래를 씹어 부른다. 노래는 가을 빗소리에 묻힌다."

"행복했던 그 날들이 있었다. 너의 생각만으로, 너의 음성만으로, 너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기뻤던 날들이 있었다. 빗속에서 그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낙엽이 어둠처럼 쌓이고 차가운 바람이 꿈결처럼 스칠 때 그의 모습도 사라진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뻤던 날들이 사라졌다. 사랑은 아픔이 되었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 사람을 보내고 술잔 앞에 앉았다. 못다 한 말들이 술잔에 떨어진다. 창틈으로 보이는 별빛은 점점 늘어간다. 빈방의 창문으로 새벽이 올 때까지 그의 이름을 부르면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그의 가슴에 내려왔다. 비가 그쳤다. 바하의 선율에 따라 먼지가 되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날아간다. 스물 즈음에 시작된 젊음의 꿈이 멀어지고 서른 즈음에는 모든 것이 잊혀져 가는데 너무 아픈 사랑은 잊혀지지 않는다."

희망을 말하는 찬송가나 곡조 변화가 없는 찬불가는 이 세상에 굴러다니는 마음을 직접 위로하지 않는다. 그의 한 소절은 위로가 된다. 그러나 그의 전체를 옮겨놓은 후 낭독하면 어두운 바다에 빠진다. 심해 속으로 내려가는 잭(디카프리오)의 모습을 셀린 디온처럼 아름답게 부르지 않는다. 잭이 그려준 그림을 올려받고서 보석을 내려보내는 로즈(윈슬렛)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이젠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할 때가 되었다. 꼭 들어야 한다면 가사는 음미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스스로 힘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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