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양복을 입고 농사 짓는 이유

2022.05.17 15:50:01

최선주

농협청주교육원 팀장

2020년 귀농·귀촌 인구는 49만 명, 가구 수는 36만 가구에 달한다. 인구수 기준 역대 3번째, 가구 수 기준으론 역대 최고다. 하지만 2018년 한국통계진흥원이 작성한 '정기통계품질 진단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귀촌으로 볼 수 없는 경우까지 포함돼서 귀촌 인구가 과다 포집' 되었다고 한다. 농민 수 통계치를 보면 좀 더 명확해 진다. 2009년 312만 명이던 농가 인구는 2019년 225만 명으로 줄었다. 매년 9만 명 가까이 감소한 셈이다. 농가 인구중 65세 이상의 비중 또한 2009년 34%에서 2019년 47%로 높아졌다. 농민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숫자는 줄고 있다. 암울한 통계인건 틀림없다. '매력적인 농업'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나 행정기관의 정책변화도 중요하지만, 농부 스스로 '농업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가' 고민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양복을 입고 농사를 짓는 일본의 젊은 농부, 사이토 군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어볼 만하다.

농사가 힘들고, 돈이 되지 않는 건 우리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300년째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사이토 기요토씨도 그런 농촌이 싫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났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혼 후 고향에 돌아수다. 2013년 사이토씨는 매력적이 농업까지야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즐겁게 일하는 멋진 농부가 되는 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마침 의류업에 종사하는 형이 "나라면 양복 입고 농사지을 텐데…."라고 한마디 했고, 사이토씨는 즉각 실천에 옮겼다. 2013년 5월 모내기를 할때부터 양복을 입었다. 재미있는건 출발은 그저 특이하게 보이려고 양복을 입은 것이었지만, 이걸 훌륭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할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언론에서 연락이 왔다. 몇차례 인터뷰를 통해 유명세를 탔다. 농사에 뛰어든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다는 점도 사람들의 호감을 키웠다. 미소 짓는 얼굴로 논 한가운데 양복을 쫙 빼 입은채, 멋진 모자를 쓰고 벼 수확물을 들고 있으니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사이토씨는 결국 스스로를 '수트농가 사이토군'이라는 개인 브랜드로 만들었다. 아울러 자신과 같은 젊은 농부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 홍보에서 출발한 이 네트워크는 지금은 공부하는 모임, 공부한 결과를 함께 시험하는 모임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WWS라는 회사와 연결되었다. WWS 제품은 양복 정장처럼 멋진 디자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튼튼하고 신축성이 뛰어나다. 방수기능도 잘 돼 있고, 때도 잘 타지 않는다. 양복은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하지만, 이 제품은 세탁기로 빨수 있다. WWS입장에선 '수트농가 사이토군' 에게 자기네 옷을 입히면 WWS브랜드를 알리는데 도움이 되는건 분명하다. WWS 브랜드에 자신이 잘 어울린다고 판단한 사이토씨도 흔쾌히 WWS의 옷을 입기로 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화와 장갑 제작도 부탁했다.

브랜드에서 최초는 중요하다. 하지만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잠깐 관심을 끌다가 이내 사라진다. 사이토씨는 달랐다. 철학이 담겨있다. '일본 농업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보자. 그러기 위해 젊은이들의 관심을 갖는 농업을 추구해 보자' 이런 철학이 바탕이 되어 '수트농가 사이토군'이란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요즘 ESG에서 말하는 목적이다. 목적이 확실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철학을 소비자에게 알릴수 있다. 철학에 동의하는 소비자는 팬으로 진화한다. SNS로 퍼 나를 때에도 단순히 재미있어야 하는 것과 기업의 철학에 동의해서 하는 것은 몰입도가 전혀 다르다. 철학에 동의해야 진정성이 가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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