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오픈런과 자사고

2022.05.16 15:50:53

조형숙

서원대 교수

샤넬 오픈런 현상. 천만 원이 넘는 샤넬 핸드백을 사기 위해 백화점이 문을 열기도 전부터 줄서서 기다리는 것을 이른다.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자.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 돈으로 천만 원짜리 샤넬가방을 샀다. '내돈내산' 샤넬이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국가의 세금으로 천만 원짜리 샤넬가방을 샀다고 치자.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오픈런 현상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돈내산 샤넬을 '처벌'할 수 있을까? 익명의 댓글 창에 '김치녀' '된장녀'라고 도배하거나 '부럽부럽'을 연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법적으로 처벌하거나 행정적 제재를 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금으로 특정 부류의 사람에게 샤넬가방을 사주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세금'으로 '그 사람들에게만' 왜 샤넬가방을 구입해 주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세금으로 샤넬을 사줄 때는 해명이 필요하고 납세자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수위에서 발표한 새 정부의 교육정책 중 한 가지는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이하 자사고로 통일)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과거의 정책을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나는 자사고를 왜 폐지하려고 그토록 애를 썼는지 모르겠다. 한때는 자립형사립고였다가 현재는 자율형사립고인 자사고는 재정 자립을 추구하고 건학이념에 따라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여지를 가진다. 쉽게 말하면, 비싼 등록금을 지불할 테니 교육과정을 '빡세게' 운영하여 실력을 보이라는 말이다. 실력 없는 자사고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오픈런 할 수요자는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몇 안 되는 자사고를 폐지하고 재정 지원을 약속하면서까지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소모적인 노력이 오랫동안 있어 왔다.

그러나 영재학교와 과학고(이하 과학고로 통일)는 두 번째 부류인 세금으로 구입하는 샤넬과 흡사하다. 학생 한 명당 엄청난 교육예산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후 카이스트와 유니스트 등 이스트(IST) 계열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 국가 세금으로 대학과 대학원까지 마치게 되는 셈이다. 한국의 학부모는 세금이 이 두 번째 부류에 쓰이는 것에는 쉽게 수긍하는 것 같다. 나에게는 이것도 꽤 흥미롭다.

자사고가 평등교육에 위배되어 폐지해야 한다면, 과학고도 폐지해야 한다. 또한, 평등만이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수월성과 학습자 다양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일반고에 오지 않아 교육이 무너진다는 논리에는 성적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교육관을 수정해야 한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자사고 폐지를 찬성하는 교사와 학부모의 비율이 높다지만 이는 여론재판으로 결정지을 문제는 아니다. 과학고는 맞고 자사고는 틀렸다는 가정에서 시작하면 곤란하다. 세금으로 명품을 구입하는 것은 옳고 '내돈내산' 구입은 불법일까? 혹은, 모두가 명품을 가질 수 없다면 판매는 처벌받아야 할까? 즉, 어떠한 논리로도 자사고를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해야 할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자사고 등을 현행으로 유지하거나 확대하여 그들의 재정을 자립화시키고 교육 수요자의 니즈를 반영하고, 절약된 세금으로 세 번째 부류의 학생이 다니는 일반고와 고등교육 기관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일반고에도 명품 급의 시설과 비교과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기초학력 보장과 진로교육 강화를 통해 교육 불평등을 개선하는데 세금이 쓰이길 바란다. 그것이 교육격차 해소와 계층 이동에 도움이 되는 인재육성 방안이라고 믿는다.

무심천변에 벚꽃이 만개한지 엊그제 같은데 학교 캠퍼스 여기저기 장미가 탐스럽게 피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참 어여쁘다. 새 정부가 출범했고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는 오월의 어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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