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 철쭉 동산에서

2022.05.12 15:42:54

정익현

건축사

오랫동안 그리던 황매산(黃梅山)에 올랐다. 황매산은 지리산 바래봉, 소백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철쭉 3대 명산 중 하나이다. 5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절정이다. 합천군, 산청군에 걸쳐있는 높이 1천113m의 황매산은 800m 높이에 주차장이 있어 접근하기 좋다.

주차장에서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멀리 산 정상이 보이고 몇 그루 나무를 제외하면 넓은 평전(平田)에 펼쳐있는 철쭉이 한눈에 들어온다. 철쭉은 고도에 따라 활짝 피었거나 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차장 쪽 동쪽 비탈면은 가을 억새의 군락지인데 누런 여백으로 남아 있는 것이 이채롭다. 철쭉 동산에서 가을 억새의 은빛 물결을 상상해 본다.

바위, 나무가 거의 없어 어느 곳에서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마치 와이드 스크린의 영화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새벽에 출발한 관계로 시간이 넉넉하여 전율을 느끼는 가슴을 진정하며 천천히 걸었다. 참 좋았던 것은 주차장을 나온 후 정상에 이르기까지 인공(人工)으로 만든 구조물이 거의 없었다.

나무로 만든 데크 길과 평상을 꼭 필요한 곳만 설치했고 돌로 만든 철쭉제 제단, 작은 산불감시 초소, 영화 촬영 세트로 만들었다는 한옥 건물 하나 그리고 정상을 오르는 급경사 나무 계단이 전부였다. 억지로 만든 전망대 하나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황매산이, 합천군의 노력이 고마웠다. 힘들게 올라간 정상에서 보일 듯 말 듯 멀리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는 기쁨은 덤이었다.

내려오는 길, 가을 억새가 있던 빈자리를 바라보며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이곳이 '핑크 뮬리'로 채워진다면? 수년 전부터 핑크 뮬리의 붉은색에 매료되어 지자체에서, 개인이 앞다퉈 심었다. 도로나 하천변에는 노란 '큰 금계국'이 점령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생태계 위해성 평가' 2급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가는 '생물 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2조 제8호에 따라 생태계 위해성 평가 1급을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하고 사육, 재배, 저장, 운반, 수입 등에 대한 규제를 한다. 황소개구리, 배스, 뉴트리아, 미국 가재, 돼지 풀, 가시 박, 양미역취, 가시 상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름만 몰랐지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금세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무심천을 걷다 보면, 둔치의 버드나무를 온통 덮어 죽게 만드는 덩굴이 바로 '가시 박'이다. 오이 덩굴로 오인할 수도 있는 가시 박은 '토종식물의 저승사자'로도 불린다.

핑크 뮬리와 큰 금계국은 이미 2019년, 2018년에 각각 생태계 위해성 평가 2급을 받았다. 2급은 '확산 정도와 생태계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는 생물'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시간을 놓치면 이미 확산되고 피해가 발생된 후다. 국가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웃 일본은 이미 2006년 큰 금계국을 생태계 위험 종으로 지정하여 퇴치 작업을 하고 재배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몇 년째 관찰하고만 있다. 어떤 생태 전문가는 핑크 뮬리보다 더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토종식물을 죽이는 '큰 금계국'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와 직접 이해관계가 명확한 사안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수질 오염, 대기 오염, 토양 오염 같은 것들. 생태계 교란 생물은 당장 내게 위해를 주지 않고, 피해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기에 관심 밖이다. 따라서 국가도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우선순위를 국민의 관심도에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쉼 없이 국민에게 알려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생태계 교란 생물이 우리의 장난감이나 즐거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생태계 교란 생물 말고도 이 강산의 환경을 저해하는 가장 큰 범인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진짜 생태 교란 종(種)은 인간밖에 없다'고.

2022년 봄, 잘못한 것도 없는데 패배자가 된 기분. 꽃보다 새 잎이 더 예쁜 초록 초록한 5월, 모두의 마음에 초록물이 들기를.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