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지심(五月之心)

2021.05.11 17:58:13

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엄마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일, 묵언 수행 중이라 목이 잠겨서 그렇지."

"묵언 수행?"

"코로나 때문에 밖에도 나가기 어려운 데다가 대기 질마저 탁해서 창문도 못 열어 놓고 책만 바라보며 묵언 수행하고 있지."

어버이날 아침 모녀의 전화 통화는 나를 웃프게 했다. 평소에는 조금만 돌려도 푸른색을 띠던 공기청정기가 어제 오늘은 하루 종일 붉은색이다. 그나마 엊그제 어린이날은 미세먼지 수치가 '보통'이어서 천만다행이었다.

5월은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날·부부의날 등을 간직하고 있어 자칫 센티해지기 쉬운 달이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 부모와 자식 간에도 뭣이 더 필요하겠는가?

서로가 건강한 것이, 마음으로 주고받는 걱정과 사랑이 최고의 선물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장자의 말처럼 세상 다 그런 것이니, 코로나 시대에도 황사의 날에도 그에 맞게 행복을 찾고 즐거움을 만들며 순리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5월의 물렁한 나에게 맞춤형 책이었다. '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너무 많고 세 사람은 불가능하다'는 말은 나에게도 위안이 되었다.

대기자가 많아 예약조차 어려웠던 책이 도착했다는 반가운 알림톡이 왔다. 소설의 부제(副題)ㅡ'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ㅡ답게 100여 일을 기다려야만 했었다. 아내는 또 밤 새워 면책 수행(面冊修行)을 할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보쌈>이라는 사극에서 7살 차돌이가,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두 눈을 똥그랗게 벌리며 "띠옹~"하고 임금님의 놀란 표정을 흉내내는 모습이 어찌나 깜찍하고 우습던지 집사람은 바닥을 구르고 나는 배를 잡았다.

얼마 전 미스트롯에 나왔던 어느 가수가 경연을 끝내고 무대를 내려오면서 한 독백 "꼴랑 노래 한 곡 부르고는……."이 인상 깊었는데, 눈물과 웃음이 많은 사람은 마음씨도 고울 거라는 생각에 그 여가수의 팬이 되었다.

내일모레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을 보러 서울에 갈 것이다. 전시되고 있는 110여 점의 작품 중에서 내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1951년 당시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던 피카소가 6·25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렸다는 그림을 생각을 가지고 깊이 있게 봐야겠다.

그리고는 성북동에 있는 '수연산방'에 들를 것이다. 이 곳은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이라 일컬어진 당대의 문장가 상허 이태준이 월북 전까지 살던 집이다. 그가 《문장강화》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 문장에서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들어가야 할 적절한 단어는 딱 하나뿐이다)과, 그의 초상화를 그려 준 동갑내기 절친 근원 김용준이 《근원수필》 발문(跋文)에 적은 글ㅡ'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맛 단맛을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글이고서야 수필다운 수필이 될 텐데…….'ㅡ을 다시 한번 새기며 차 한 잔을 마시고 내려 올 것이다.

우리글 중에 '눈부처'란 말이 있다.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을 말하는데 동자부처라고도 한다. 마음처럼 고맙고 아름다운 이 오월에,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부처로 맺혔다가 한 방울 눈물 되어 툭 떨어지면 좋겠다. 청초한 당신께 각시붓꽃 한 송이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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