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상산자석 벼루 맥 잇기 위한 지원 필요

기능보유자의 제작기술 향상과 전시관 운영 제안

2020.09.22 17:59:37

진천상산자석벼루의 맥을 잇기 위한 작업이 진천군에서 추진되고 있다. 사진은 상산자석벼루를 제작하는 장면.

[충북일보] 진천군이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진천상산자석벼루'의 맥을 잇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군은 지난 21일 진천군청에서 충북문화재연구원과 상산자석벼루 학술조사 보고회를 갖고 진천 상산자석 벼루의 맥을 잇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진천상상자석벼루'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산자석벼루는 장방형의 길쭉한 형태의 민무늬로 자석특유의 붉은 빛을 띠면서 표면이 부분 희끗희끗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진천 상산자석은 단양과 정선에서 생산되는 자석보다 흡수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약천 남구만(1629~1711년)이 상산자석벼루를 '여우겨드랑이의 하얀 털로 만든 갖옷'에 빚대 상산자석벼루의 가치를 예찬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중기에는 상산자석벼루는 가자연, 장생문일월연, 후기에는 용연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1900년대 이후 '조선환여승람'에는 진천지역의 특산품으로 자석연이 기록되기도 했고, '상산지'에는 초평면 전 지역에 돌이 많으며 그 중에서 황곡(현재의 신통리)에서 생산되는 돌의 품질이 아주 세밀하고 윤기가 흘러 먹물이 잘 스며들지 않고 붓털에 먹이 잘 머금어 벼루의 재료로 마땅하다고 기록돼 있다.

1950년대 이후에는 벽돌의 장인인 김인수씨와 함께 활동했던 벼루장들이 두타산 자락인 초평면 신통리와 증평군 도안면 연촌리 일대에서 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1960년대 이후 10여명의 벼루장들이 남아 박정희 정권시대에 가치를 인정받아 정부에 납품하면서 호황을 누렸으나 1980년 이후 벼루산업의 쇠퇴와 소비감소로 상산자석벼루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현재까지 김인수씨의 계보를 잇고 있는 기능보유자는 유길훈(울산광역시무형문화재 6호 벼루장)씨와 장인의 제자인 권혁수(진천 상산자석벼루 제작 기능보유자)씨가 유일하다.

군 관계자는 "상산자석벼루의 역사성과 지역성에 대한 가치는 충분하다"며 "상산자석벼루의 맥을 잇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진천상산벼루는 벼룻돌 채취부터 조각기법 등 전통적인 제작기법을 제대로 전수가 안된 상태"라며 "자석벼루의 전통지식을 이어 갈수 있는 기술적인 토대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진천군이 벼룻돌 채취에 대한 방법 지원과 채취지역의 지표조사를 위해 좋을 재료를 확보 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상산자석벼루의 우수성과 지역특산물을 홍보할 수 있는 전시관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천 / 김병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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