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엄마의 이름으로

2017.06.04 13:00:46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어머니가 딸을 성추행한 자를 살해한 참극이 있었다. 청주 오창에서 발생한 산학겸임교사 살인사건이다. 전국에 청주 어머니의 극단적 모성을 알린 피의자에게 최근 징역 10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마흔여섯의 젊은 어머니는 선고 전 최후 발언에서 "잘못했다"며 흐느꼈다.

지난 2월, 고등학교에서 취업지도를 맡은 50대 산학겸임교사는 취업을 상담한 여학생에게 저녁을 사주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긴 후 몹쓸 짓을 했다. 어머니는 성추행 피해를 울면서 털어놓는 딸의 말에 이성을 잃었다.

사건 50분전, 어머니는 교사에게 만나자는 문자를 보냈다. 친동생에게는 "다 끝내고 감옥으로 가겠다"란 문자를 남기고 집에 있는 과도를 챙겼다. 약속장소인 카페에서 대면하자마자 극도로 흥분한 어머니에게 상해를 입은 피해자는 인근 병원으로 가던 도중 과다출혈로 숨졌다.

딸의 말에 분노한 어머니가 산학겸임교사와 만날 약속을 하고나서부터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총 시간을 계산해보니 겨우 1시간 남짓이다. 이성을 잃고 물불을 가리지 못한 어머니의 행동이 눈으로 목격한 듯 그려진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범행 배경과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범행 후 자수한 점 등을 고려해 선처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우발적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범행이 계획적일뿐 아니라 사적인 복수라는 이유로, 앞서 검찰이 구형한 징역 10년을 그대로 선고했다.

"피고인의 딸이 노래방에서 피해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되지만, 범행은 우리 법질서가 용납하지 않는 사적인 복수"라는 것이 판시내용이다.

오창사건에 대한 여론은 대체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어머니에게 동정적이다. 어린 딸이 믿고 따랐던 늙은 취업상담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울고 있다면, 부처님이라도 이성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사건의 진실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여학생과 소주 3병을 마신 교사가 밀폐된 노래방에 있었던 것은 밝혀졌으나, 딸의 말만 듣고 살인을 저지른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감추어진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지난 2012년 미국 텍사스주 대배심은 다섯 살 난 딸을 성추행한 범인을 때려죽인 아버지에게 형사기소를 기각하는 평결을 내린 바 있다. 아버지의 살인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한 것이다.

텍사스주 라바카 카운티의 '헤더 맥민' 검사는 "텍사스주 법은 성폭력을 저지하기 위해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하게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들도 대배심의 판결에 박수를 보냈다. "내 아이였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라며 딸을 보호한 아버지에게 메달이라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반응이었다. 막힌 속이 뚫리는 판결이다.

미국식의 판결까지야 바라지 않지만, 사적인 복수라 해서 오창사건의 피의자에게 내린 중형은 지나치게 무겁단 생각이 든다.

'피해자가 변명할 기회도 없이 성추행범으로 낙인찍힌 점, 유족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사를 가야하는 등 2차 피해로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점, 유족이 엄벌을 탄원한 점'등이 징역 10년의 양형 이유 중 일부다.

살인사건 피해자로 처지가 전도된 성추행 가해자의 명예와 남은 유족들의 고통까지 헤아리는 것이 현행법이다. 그렇다면 성추행을 당하고 어머니와 생이별 한 어린 딸의 상처는 어떤 법으로 보듬어야할까.

가장 안타까운 일은 딸을 추행한 범죄자를 법 대신 스스로 단죄한 어머니의 행동이다. 일순간의 화를 참고 넘어가면 백일의 우환을 면할 수 있다 했는데, 엎질러진 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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