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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

젊은 엄마가 등에 아기를 업고 간다. 참으로 흔하던 풍경이었는데 요즘은 보기 어려운 그림처럼 느껴진다. 뽀얀 아기의 두 발이 엄마의 걸음에 맞춰 달랑거린다. 고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깊이 잠이든 모양이다. 젊은 엄마는 작은 가방이 들려있는 양손을 혹여 아기가 밑으로 늘어질까 봐 아기의 엉덩이 밑에 꼭 맞잡고 더운 길을 걷고 있다.

두 아이를 기르며 나는 늘 이런 모습으로 시장엘 가고 시부모님 마중하고 귀가가 늦는 남편을 골목 서성이며 기다리곤 했다. 잠투정하던 아기는 내 등에 기대기만 하면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비록 잠든 모습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엄마는 등으로 아기의 모습을 본다. 아기의 숨소리, 고개를 돌리는 모습, 입을 오물거리는지 코를 찡그리는지 뭐가 불편한지 등으로 느끼는 것이다.

내 두 아이도 '어부바' 소리를 들으면 무릎으로 먼저 듣고 기어 왔다. 나도 다 자라서까지 아버지가 어부바~하는 소리를 들으면 모든 슬픔이 사라지곤 했었다. 엉엉 울다가도 삽시간에 눈물이 쏙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엄마라는 단어만큼 따뜻한 단어가 어부바가 아닐까.

얼마 전부터 시니어에 제공되는 일자리로 신협에 자리를 구했다. 신협에 들어서면 내 뒷자리에 엄마 돼지와 아기 돼지 세 마리 인형이 있다. 파란 돼지가 분홍 돼지를 업고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어린 고객들이 달라고 떼를 쓸 만도 하다.

요즘의 로고 송이나 카피를 들을 때 심장에 쿵 하는 울림이 오는 것들이 있다. 어떤 은행의 기울어진 우산을 들을 때도 감동적이고 어부바라는 신협의 로고 송을 들을 때도 감동이다. 누군가를 위해 하나의 우산을 펴들었을 때 내 어깨를 생각하기보다는 상대의 어깨를 생각한다. 상대를 위해 기울일 수 있는 만큼 우산을 기울인다. 비 오는 거리를 걸어 집에 와 보면 내 한쪽 어깨는 우산을 쓰지 않은 것처럼 젖어있다. 그래도 누군가를 '젖음'으로부터 보호했다는 넉넉한 마음이 들어 전혀 척척하지 않은 것이다.

내 것이지만 내가 볼 수 없는 '등'은 어쩌면 남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등을 나는 무엇에 사용했을까. 얼굴처럼 화장품 한번 발라준 적도 없고 쓰다듬어준 적도 없다. 무거운 가방을 지게 했고 잘못했을 때 엄마의 손바닥 매를 맞는 곳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궂은일을 맡아 하게 하면서도 아플 때 파스 한 장 붙여주기도 힘든 곳이었다. 그러나 내 아버지의 등이 내 슬픔을 달래주는 안식처였던 것처럼 내 등도 두 아들에게는 요람이었을 것이다. 넉넉하지 않아 내가 내어줄 것은 그냥 빈자리 같은 등이었다. 아기를 업고 포대기로 감싸고 긴 골목을 서너 바퀴 서성이면 아기는 그네를 타는 꿈을 꾸는 것처럼 새근새근 잠이 든다.

내가 있는 으뜸 신협은 제법 고객이 많다. 유모차를 타고 자랐을 것 같은 젊은 직원들이 어부바라는 말의 따뜻함을 잘 아는 것이 신통하기도 했다. 가끔 전혀 업어주고 싶지 않은 고객이 오면 화가 날 만도 한데 싫은 표정 없이 잘 업어준다. 나이 많은 나도 젊은 직원들이 잘 업어준 덕에 편안히 흔들리고 있다.

사는 게 참 고단할 때가 많다. 기댈 곳 없이 막막한 길을 하염없이 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 우산을 씌워주거나 아빠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어부바를 외쳐준다면 얼마나 든든했겠는가. 코로나로 모두 처량한 이때 대출을 받으러 기운 어깨로 은행을 들어서는 그 막막한 등들을 보며 누군가는 어부바하며 넓은 등을 내미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토닥여주고 싶다.

저 뜨거운 날에 아기를 업고 가는 젊은 엄마의 어부바가 눈물 나게 나를 추억 속으로 끌고 간다. 내 아기를 업고 서성이던 한여름의 무심천이 잔잔히 흘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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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