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21.04.15 17:27:14
  • 최종수정2021.04.15 17:27:14

지명순

(사)전통음식문화원 찬선 원장/유원대학교 호텔외식조리학과 교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과 음식이 있다.

외할머니의 칠순잔치 때 맛보았던 약밥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백세시대이니 회갑이니 칠순이니 하는 축하 잔치를 크게 하지 않지만 70년대만 해도 칠순을 넘긴다는 건 대단히 장수하는 것이었다.

잔치 준비에 온 집안 식구가 동원되었는데 이모부는 몇 날 며칠을 외삼촌댁에 머물며 갖가지 음식을 정성들여 고이셨고, 숙모와 이모들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온갖 귀한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셨다.

12살 호기심 많은 꼬맹이였던 나는 매일같이 외삼촌댁을 드나들며 잔치준비과정을 지켜보았다.

약밥

여러 가지 음식 중에서도 약밥만큼은 외할머니 지휘 하에 만들어졌다.

찹쌀을 시루에 쪄서 검은색 물을 들린 후에 대추와 밤을 섞고 참기름과 꿀까지 듬뿍 넣어 비벼 다시 쪄서 커다란 나무 판때기에 펴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 네모난 모양으로 썰었다.

검은 밥을 눌러 놓은 듯한 이 떡을 외할머니께서는 귀한 떡이라고 하시며 아껴 사용하셨다.

그 이후로 '약밥'은 외할머니 댁에서 자주 맛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약(藥)'이 되었는지 외할머니는 백수(白壽)를 누리셨다.

반찬등속에도 약밥 만드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약밥은 좋은 찹쌀을 정하게 쓿어서 또 좋은 대추를 삶아 껍질을 벗기고 그 대추육을 찹쌀과 한데 합하여 밥을 짓되 밤을 껍질을 벗기고 또 잣을 까서 밤과 한데 넣고 또 좋은 곶감을 넣고 생강을 저미어 넣고 참기름을 넣어서 밥을 짓되 솥을 자주 열지 말고 밥을 지어서 뜸이 다든 후에 솥을 열고 주걱으로 슬슬 이겨서 한데 합하게 한 후에 또 소두방을 닫아 푹 뜸 든 후에 퍼내어라.'

반찬등속 약밥의 재료는 찹쌀, 대추, 밤, 곶감, 잣과 양념으로 참기름과 생강을 사용하고 있다.

모두 식재료이면서 약으로 처방되는 약재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찹쌀은 멥쌀보다 소화가 잘되고 정기를 보충하는데 효과가 있고, 밤은 신장의 기운을 돋우는데 으뜸이고, 곶감은 위기(胃氣)를 잘 통하게 하여 장위를 튼튼하게 하고, 대추는 위기(胃氣)를 고르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잣은 폐의 기능을 정상으로 이끌어 기침을 멈추게 하고 기운을 소생시킬 뿐만 아니라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고 하였다.

또한 양념으로 사용하는 참기름은 혈맥을 잘 통하게 하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오장육부의 기운이 잘 돌게 한다고 하였다.

약밥은 신라 소지왕 때 국가의 재앙을 미리 알려준 까마귀에게 보은의 뜻으로 찹쌀밥을 검게 물들여 산에 뿌린 데서 유래한 음식이다.

그래서 약밥은 검은색을 무엇으로 어떻게 내는지가 관건이다.

요즘은 설탕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검게 태운 캐러멜 색소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100년 전 반찬등속에는 검은색을 내면서도 단맛을 내는 대추를 고아 그 물로 밥을 지었다.

참으로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반찬등속 약밥의 진수는 생강을 넣어 밥을 지었다는 것이다.

다른 조리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재료의 사용이다.

생강은 소화를 도와주는 대표적인 약재인데 약밥을 먹고 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으로 추측된다.

또한 참기름이 많이 들어가는 약밥의 산패를 막아 오래두고 먹어도 기름 쩐 냄새가 나는 않게 저장하는 향신료로 사용되었다.

반찬등속의 약밥은 그 옛날 할머니가 만들던 약밥과는 다른 방법으로 만들라고 적혀있다.

시루를 사용하지 않고 가마솥에 하는 방법인데 찹쌀과 밤, 대추, 곶감과 양념까지 한꺼번에 넣고 대추 물을 넣어 밥 짓듯이 한다.

처음 원문 그대로 따라 약밥을 지어 보았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다가 압력솥을 이용하여 약밥을 만드는 동영상을 보고 조리 도구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압력솥은 가마솥의 원리와 비슷하다.

가마솥을 구하기 위해 수소문 끝에 찾아간 명인님께 가마솥의 원리에 대하여 공부도 하였다.

가마솥은 솥뚜껑의 무게가 무거워 온도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높은 온도를 유지 시켜 주어 맛있는 밥이 된다.

뚜껑이 가벼 우면 수증기가 쉽게 빠져나가지만 무거우면 덜 빠져나가게 되어 내부압력이 올라간다.

그러면 물의 끓는점이 올라가 밥이 100도 이상에서 지어져 낮은 온도에서보다 더 잘 익게 된다는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반들반들 윤이나는 가마솥에 재료를 안치고 정성스럽게 불을 조절하며 약밥을 지었다.

대추의 은은한 향과 단맛 참기름의 고소한 향 그리고 고슬고슬하게 씹히는 밥알과 한 식구처럼 조화를 이룬 밤, 곶감, 잣의 맛에서 품위가 느껴졌다.

반찬등속을 재현하는 일은 단순히 문장만 읽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에 부엌의 조리 도구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린 날 우리가 외갓집에서 얻어먹던 그 약밥의 맛을 추억하며 지금 어린 사람들에게 100년 전 반찬등속 음식을 가르치고 있다.

그대로 배우고 그대로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자자손손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