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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

가을! 눈이 시리다. 한 여름내 푸름으로 젊음을 태우던 나뭇잎도 눈이 시려 살그머니 눈을 감아버린다. 가을은 그렇게 시린 빛으로 다가온다. 한여름 한줄기 뙤약볕이라도 더 받아들여 속을 채우려던 곡식도 눈이 부셔 스르르 고개를 떨어뜨린다. 햇빛을 피하려 잎은 누렇게 퇴색되어가고 중년의 가을은 어쩌지 못한 청춘을 멀리하고 깊어만 간다. 푸르른 잎도 백일홍도 한 시절 내 젊음도 한 시절을 풍미하고 결미를 남긴 책장을 덮듯 그렇게 덮어 두어야 한다.

플라타너스 너른 잎이 툭 떨어져 내리면 속절없이 흘려보낸 듯한 한해를 돌아본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뉴턴은 만유인력을 발견했지만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내가 찾아낸 것은 무엇일까. 덧없는 욕심과 집착을 끌어안고 허우적대다가 별수 없이 떨어지는 낙엽 같은 인생사를 느끼고 있는 걸까.

여기저기 늦은 꽃을 피운 코스모스가 얼마 남지 않은 따사로움을 받아들이려 분주하고 맨드라미는 어느새 계절을 제 속에 가두고 핏빛으로 익어간다. 조롱조롱 매달린 홍시는 축제를 장식하듯 홍등으로 불을 밝힌다.

가을은 해마다 찾아왔으련만 이 가을은 왜 이렇게 고즈넉하게 느껴지는 걸까? 불현듯 찾아온 중년도 아닐진대 이 가을이 지나면 순간이동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노년에 들어서게 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 청춘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감각을 잃어버리고 요란했던 젊음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물러서야 한다는 허망함, 사랑하고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가슴을 텅 비게 만든다. 가을은 절망적일 만큼 가슴이 아리다.

강물이 흐르고 구름이 흐르듯이 인생도 어느 한순간에 머무름 없이 흘러가야 하거늘 싱그러운 젊음과 과거의 화려함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내 발목을 잡는다.

이 가을! 분명 상실의 계절이다. 풍요로운 곡식을 거두고 만종의 기도를 드려야 할 시간인지 모르겠으나 옹졸한 마음은 떠나가는 것들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겸허함을 내어 주지 않는다. 언제나 잃은 것에 집착을 했고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했고 내게 주어진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았다. 늘 내 곁에 나를 지키고 있는 모든 것들에 당연하게만 여겼었다.

가을에! 이 계절에 진정 내가 거두어들여야 할 것은 무엇이며 잃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힐끗 서둘러 떨어지는 석양이 발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에 어린다.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 가을은 오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으리라. 하늘은 무엇인가를 잃게 하면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마련해 두신 것임을 믿어야 한다. 떠나는 계절과 말없이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과의 이별도 하늘이 준비하셨을 것이고 더 커다란 기쁨을 이미 마련해 놓으셨을 것이다.

아마 우리는 이 가을에 잃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고통 속에서 커다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 하늘은 이유 없는 상실을 강요하지 않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보자.

잃어야 할 것보다 풍성히 거두어들일 수확이 많을진대 이 가을, 어찌 온통 눈물만이 되랴. 또 한 번의 가을이 나를 세워두고 긴 그림자를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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