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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청주시인협회

가을이 깊어 겨울로 넘어가고 있는데 넝쿨장미꽃 몇 송이가 오돌오돌 떨고 있다. 저 여린 잎으로 찬바람을 막아서고 있다는 것은 처절한 몸부림이다. 온몸을 웅크리고 절망에 대해서 수없이 생각도 했을 것이다. 아침이 되어도 온기를 품지 못한 햇살을 원망하기도 했겠고 스스로 추락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심하지 않았을까.견딘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때론 불투명하기도 하다. 준비하지 못한 어려움이 폭설처럼 몰려오기도 한다.오래전 강원도에 살 때에 새까만 하늘에서 폭설이 내려 비로 쓸어 내거나 삽으로 밀어내는 일로는 감당치 못하여 세상과 고립된 적이 있었다. 고립은 고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였다. 세상에 묻혀 사는 사람에게 세상과의 단절은 절망일 수도 있다. 문정희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한계령의 폭설 속에 갇히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눈 속에 갇히고 보면 그런 사랑타령을 할 여유라곤 없게 된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전신주가 넘어지고 전기까지 끊기고 나면 하얀 설경은 지옥 같은 암흑으로 느껴지게 된다. 집 앞으로 길을 내지 못하면 아무도 찾지도, 보이지도 않는 세상에서의 존재를 지워버리게 되는 것이다. 촛불도 켜지 못하고 지낸 그 하룻밤이 엄청난 공포였다.

TV의 자연인이란프로를 볼 때마다 세상과 단절된 삶을 유유자적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세포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화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산속에서 적막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은 강심장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씩 시골의 전원주택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골의 아름답고 여유로운 풍광이 좋기도 하겠지만 나처럼 고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안식처가 되지는 못한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문화와 적당한 흥청거림에 길들여진 내게 전원주택이라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병원의 응급실에서 밤을 새야하는 일이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 안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 슬픔과 절망과 비통함을 누구도 위로할 수는 없었다. 약간의 떠들썩함에 길들여진 내가 그 적막을 견뎌야하는 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였다. 바늘 하나만 떨어져도 벼락 치는 소리가 들릴듯했다. 숨소리도 너무 큰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코로 조심스럽게 내쉬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거세게 불어 아직 제 빛을 내지 못한 단풍잎을 머리채 잡아채듯 흔들어 대고 있었다. 작은 문틈으로 새들어 오는 바람소리가 머리끝을 서게 했다.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으니 고스란히 견딜 수밖에 없었다.

슬픔을 견디는 일은 어쩌면 적막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이 깊은 만큼 적막도 깊었다. 공연히 발자국 소리를 내며 복도를 걸어보았다. 내 발은 슬픔에 질질 끌려 다닐 뿐이었다. 그 슬픔을 끌고서 적막 속에 들어가 잠이 들고 싶었다. 고요와 쓸쓸함이 가득한 적막은 그 어느 것도 속에 들여 놓지 않았다. 두려움이 깊어지면 나는 눈을 감고 있지 못한다. 어디를 보는 것도 아니면서 눈을 감는 일이 마치지지 않는 전투를 치르는 일이라도 되는 양 눈을 치뜨고 버틴다. 무엇을 견디는 일은 숨 막히는 고통을 이겨내는 일이다. 누구도 내가 되지 못하고 누구도 나만큼의 슬픔을 함께하지 않는다. 두렵고 힘이 들 때 기도를 한다. 제발 두 눈 부릅뜨게 해 달라고. 적막함의 힘이 세지지 않기를, 슬픔의 깊이가 깊지 않기를, 견디는 일이 고통만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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