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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청주시인협회

가을 산이 붉고 노랗게 물들었다. 지난해 또 그 지난해처럼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단풍은 곱게 물드는 것이겠지 하고 시간의 흐름만을 생각한다. 내게는 그냥 흐르는 일상인 것이다. 주말에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서 가까운 산으로 계곡으로 다녀오면 가을의 풍경은 훌쩍 시간을 넘어 은백의 겨울 풍경화를 펼쳐 놓는다.

금년의 단풍은 날씨 탓인지 빛깔이 곱지 않다고 한다. 때 아닌 태풍으로 일찌감치 낙엽이 된 곳도 많다고도 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단풍은 해마다 아름답다. 한해의 절정이다. 단풍구경 놓치면 가을을 놓친 거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을 놓치고 지나는 적이 많았다. 요즘은 한해 한 계절이 소중하다는 생각에 가을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산에 자주 가는 편이다. 아직 나는 지리산을 가본 적이 없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향일암에 다녀오고 나서는 여행에 자신감이 좀 붙은 것 같다. 금년에는 난생처음 지리산을 가볼 요량이다. 무심히 어머니께 지리산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했던 것 같다. 정신이 맑지는 않으신 분이라 무심히 흘렸는데 어머니가 여행 언제 가느냐고 자꾸 물으신다. 내가 여행을 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자꾸 물으시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퇴근을 하고 지인들과 칼국수로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문학회 일을 이야기하다 보니 7시가 넘었다. 부랴부랴 집에 와서 사무실 문단속이 잘 되었는지 보고 와야겠다고 했더니 내가 또 나가는 것이 싫은 눈치이다. 무심히 지나는 말로 "엄마도 같이 갈래요·" 하고 물었더니 선뜻 그런다고 하신다. 순간 내가 당황했다. 지팡이를 짚고도 걸음이 불편하신 분이 밤에 따라나서겠다고 하니 아차 싶었다. 어머니의 외투를 입혀드리며 뼈만 남은 몸에서 외로움의 냄새를 맡은 듯 했다. 얼마나 걷고 싶었을까. 24시간 감옥 아닌 감옥에서 창밖으로 지나는 시간을 읽고 계셨겠지. 요양사가 가고 나면 종일 소파에 앉아 나만 기다리신다. 누군가 나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이 꼭 행복으로 돌아오지만은 않는다. 어머니의 시선은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 잠자리를 봐드리고 잠이 드신 것을 보고 나서야 목줄에서 풀려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외투를 입혀드리고 신을 신기고 차에 태우는데 까지만 해도 내 힘의 절반은 소진된다. 사무실에 가서 3층까지 어머니를 부축해 올라갈 생각에 겁이 더럭 났다. 그러나 얼마나 나와 보고 싶었으면 따라 나섰을까 생각하면 천번만번 힘을 내야하는 일이다.

몇 번을 쉬어가며 3층 계단을 오르자 이미 어머니의 다리는 풀어져 자꾸만 꺾어진다. 어머니가 이렇게 된 것은 세월 탓만이 아니고 병 때문만도 아니라는 자책이 든다. 곁에서 음식을 챙기거나 운동을 함께하지 못한 자식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이면 다녀올 거리를 엄마와 나의 온 힘이 소진 될 때까지 근 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일하는 의자에 앉혀드리자 안도의 깊은 숨을 토해내신다. 이곳에 얼마나 와보고 싶으셨을까. 걸음이 자유로울 때는 매일 들러서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시고 청소도 해주시고 간간이 간식을 챙겨주고는 내려가셨었다. 책상도 의자도 손으로 다 쓰다듬어 보시고 냉장고도 살피시고 새로 놓은 에어컨 난로도 꼼꼼히 눈에 넣으신다.

언제 여행가느냐고 자꾸 물으신 것은 어쩌면 어머니가 나도 가고 싶다는 말이었는지 모르다. 산으로 계곡으로 가는 가을 여행을 어머니와 나는 야밤에 빌딩 등산으로 대신한 셈이다. 한 번씩 어머니를 모시고 나갔다 오면 어깨와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다. 아들과 며느리는 그런 나를 위해 파스며 안마기를 사들인다. 나도 어쩌면 내 아이들에게는 무거운 짐인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져버리는 어머니의 얼굴에 홍조가 돈다. 달밤에 체조했다고 웃으신다. 올가을은 놓치지 않고 달밤 단풍구경을 했다고, 봄날에는 벚꽃구경도 가자고 오랜만에 두 모녀가 잡담의 단풍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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