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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충북도 바이오정책과장

최근 <동물, 원>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동물원이 나들이 장소로만 남아있는 나에게 동물원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는 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첫 장면부터 익숙한 동물원 풍경이 펼쳐지는데, 바로 그곳은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청주동물원'이었다. 다른 동물원에 비해 시설이 더 낫다거나 규모가 크지도 않아 청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놀러온다고 해도 소개해주기에는 좀 꺼려지는 곳이었는데, 이곳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대체 무슨 내용일지 궁금했다.

동물원을 배경으로 동물들의 일상을 담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영화는 수의사와 사육사들의 일상과, 야생과 사육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들의 고민을 그리고 있었다. 야생에서 멀어진 야생동물들이 야생에 좀 더 가까운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동물원을 개선하려는 노력들도 담고 있었다. (영화 관람 이후 동물원을 방문했는데, 좁은 공간에 갇힌 표범을 위해 사육장 간 구름다리를 놓고, 곰사육장의 시멘트 바닥을 흙으로 바꾸는 등 자연과 가까워진 동물원 곳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청주동물원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보호‧증식‧복원을 목적으로 하는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전국에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를 포함해서 세 군데에 불과하단다.) 수의사가 삵과 같은 멸종위기종을 대상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장면에서는 '기린이나 코끼리 같은 대형 동물들도 없고 예쁘지도 않아서 청주동물원은 동물원 같지 않다'고 불평했던 나를 부끄럽게도 했다.

영화 중 사육사가 친구들이 "너 오늘도 똥 치우러 가냐"며 놀리는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니"라면서 씩 웃는 장면이 있었다. 그 씁쓸한 웃음과는 달리 왜 이 일을 하냐는 물음에 함박웃음과 함께 "그냥 동물이 좋아서요"라는 대답에는 괜한 감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언제나 울타리 뒤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그 공간에 들어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울타리 뒤에서는 남들은 아무렇지 않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 일들로 고민해야 하고, 시시각각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을 처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게 내 일이니 피할 방법은 없다.

2019 오송화장품뷰티산업엑스포가 지난 토요일 막을 내렸다. 5일이라는 짧은 기간 진행되는 행사지만, 그 준비는 연중 계속이다. 작년 이맘때쯤 홍보영상을 제작하고 해외 박람회에 뛰어다니며 홍보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기업을 모집하고 행사장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일들로 시간을 보내다보면 벌써 행사 날짜가 부득부득 다가온다. 특히나 행사 장소가 일반 전시장이 아닌 오송역이다 보니 매년 달라지는 여건에 따라 오송역 곳곳을 사용할 수 있을지 행사 시작 전까지 불안한 마음을 들고 산다. 전시장을 대신할 대형 텐트가 뚝딱뚝딱 설치되는 그 순간의 뿌듯함은 울타리 뒤에 있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오송역장님을 비롯한 코레일과 철도시설관리공단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공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개막식 퍼포먼스와 이벤트들은 어떻게 해야 적어도 작년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머리를 털어 아이디어를 짜내어보지만 그건 실현 불가능이라는 답을 듣기 일쑤다. 이것 말고도 행사를 시작하기까지의 난제들은 무궁무진하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무대 뒤 나와 우리 직원들이 해결해야 할 일들이었다.

지난 토요일, 행사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 차 안에서 샤프의 <연극이 끝나고 난 후>를 들었다.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뚝딱뚝딱 부스들을 철거하는 소리는 누구에게는 해방감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약간의 허무함으로 다가온다. 일 년 치 농사가 끝나고 쌓여있는 농작물을 보며 추수의 기쁨을 맞이하는 농부들이 부럽다는 요상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행사 결과와는 상관없이 무대 뒤를 분주히 오갔던 우리 모두 다 행사의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은 말로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영화 <동물, 원>의 포스터에 적혀있는 문장이다. 행사가 끝난 지금, 행사장을 방문해주신 분들을 포함, 행사에 관여한 모든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참, 영화는 나에게 별점 5점으로 모자랐다. 청주동물원 그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라도 꼭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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