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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병설유치원교사

난 나를 믿지 않는다. 나를 믿어서 얻은 낭패감이 그동안 수없이 많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를 믿지 않기로 했다.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이지. 내 뇌는 편집을 통해 기억하고 싶은 일만 확대재생산하고 그것을 그대로 믿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들과 사물들과 장소들을 이해라는 단어를 통해 오해하고 산다. 오늘 주말농장의 침대 시트를 빨려고 꺼내다가 나는 반가움에 소스라쳤다. 거기 있었다. 꿈에도 생각을 못 했었는데 침대 시트 위도 아닌 시트 아래에 그것이 왜 들어가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던 여름날이 훅 떠올랐다.

석 달 전 직무 연수가 있던 날이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충북스포츠센터로 향했다. 날씨는 더웠고 에어컨은 고장 나 있었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풀고 갔던 머리카락을 묶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풀면 덥고 묶으면 머리가 아팠다. 드디어 점심시간, 밥을 함께 먹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장도 볼 겸 육거리 시장을 향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가 정겨웠다. 간단히 꼬마 김밥과 어묵으로 허기를 달래고 장을 보기 시작했다. 반찬가게에 들어서니 각종 반찬이 눈길을 끌었다. 오징어 젓갈을 사자 깻잎을 덤으로 주었다. 만 원 이상을 사면 주차권도 주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일반 쇼핑몰 못지않은 시설과 물건에, 육거리 행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다고 스스로 흐뭇해했다. 점심 후 다시 연수 장소로 갔다. 오후 내내 찜통이었다. 에어컨은 a/s 신청을 했으나 수리 기사들이 다 예약이 되어 있어 당일 방문은 어렵다고 했다. 폭염에 29명이 지하의 꽉 막힌 공간에서 헉헉거리며 연수를 들었다. 나는 또 머리를 질끈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귓불을 몇 번 스쳤던 것 같다.

연수를 마치고 귀가하는 차 안에서 무심코 백미러를 봤다. 사라졌다. 오른쪽 귓불에 있었던 나비 귀걸이 한 짝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또 다른 꽃을 찾아 떠난 걸까.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을까. 향도 색도 없는 어정쩡한 내가 못마땅했던 걸까. 우리는 십 년을 함께 지냈었다. 둥근 고리 아래 나비가 붙어 있는 것이라, 고리만 채워두면 여간해서는 귀에서 빠지지 않았다. 잠잘 때도 목욕을 할 때도 늘 끼고 살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 몸처럼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침에 한 번 거울에서 마주치면 반짝이는 그녀의 미소에 나도 눈길로 회답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녀와 내가 인사를 했었던가. 그녀가 노란 날개를 펄럭이며 내게 소리 없는 소리로 안부를 물었던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침대 위를 샅샅이 뒤졌다. 흔적도 없었다. 나의 동선을 곰곰 생각했다. 부엌으로 갔다. 허리를 숙이고 바닥을 찬찬히 훑어봤다. 깨끗했다. 화장실로 거실로 나비를 찾아다녔지만,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연수 강사에게 전화를 했다. 몸으로 하는 연수였으니 준비체조나 마무리 체조 혹은 동작 연수 과정에서 그곳에 떨어졌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 받던 곳에 떨어져 있을 수도 있으니 수강생들에게 단체 카톡을 넣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소식은 오지 않았다. 다시 머리를 쥐어짰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이 오가는 시장에서 떨어졌다면 찾기는 글렀다고 맘을 먹었지만,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수많은 날들이 어제로 흘렀다. 오늘 나비가 다시 내게로 왔다.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나에 대한 믿음이 한 걸음 더 멀어졌다. 매사에 호언장담하며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건들과 사물들을 오해할 수 있는 일인지. 뇌의 가소성을 생각해 보며 모든 일에 판단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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