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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너무 크게 자라지 말것",

"너무 뚱뚱해지지 말것."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에게 정해진 규칙이 아니다. 도로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중 한쪽 나무들에게 들이대는 잣대다. 불행하게도 이 가로수들은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딸 기세로 곧게 곧게 자라는 메타쉐쿼이어다. 자동차들이 바쁘게 다니는 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 나무는 거침없이 하늘로 뻗어 원추 모양으로 죽죽 자라고. 맞은편에 있는 나무들은 기형적으로 뭉툭하게 크고 있다.

   초록 잎이 뒤덮인 여름이 지나고, 붉은 갈색 잎이 떨어지기 전까지 가로수 길은 그런대로 봐 줄 만하다. 곧은 나무를 마주하고 동글동글 나름대로 귀여워 보이는 나무들이 나란히 서 있다. 가끔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치기도 한다. 하지만 계절이 지나 붉은 갈색 잎마저 부르르 떨어낸 뒤부터는 이상한 모양의 가로수들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줄지어 늘어선 메타쉐쿼이어의 뭉툭 뭉툭 잘려나간 자리에는 잔가지들이 빼곡히 나 있다. 다음 해 이른 봄이면 새로 돋아난 그 가지는 또 잘린다. 도로의 표지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상가의 간판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지나가는 전기선과 전화선이 걸린다는 이유로···,기이한 모습으로 길가에 주욱 늘어 서 있는 적나라한 나신들을 보면서 불쑥 느끼게 되는 감정은 불공평함, 그다음 줄곧 마음을 붙잡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다.

나무들도 비옥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들이 있고, 모진 환경에서 겨우겨우 이어가는 목숨이 있다. 팔자려니 하고 체념할 일이겠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남들과 다르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것처럼 참기 힘든 일도 없다. 아주 사소한 감정이 어느 때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몇 미터 안 되는 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 있는 나무들은 나무의 본성대로 잘 커 가는 반면, 다른 한쪽은 자랄만하면 잘려나가는 아픔을 매년 이른 봄마다 겪어야 하는 운명이라니, 그럼에도 봄이면 몽당 빗자루처럼 생긴 몸뚱이에 초록 잎을 내밀 수밖에 없는 나무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삶과 다를 게 없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로 태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무던한 고행자의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하려니와, 나무야말로 자급자족하는 삶의 전형으로 보였기에 혼자 살아도 그리 외로울 것 같지 않았다. 이양하 수필가는 나무를 보고,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아는 덕을 지녔다고 했다. 새들이 오고 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고독한 철학자이고 현인이라고도 했다. 그러려면 수필가가 책에 썼듯이 나무는 각자 천성대로 가지를 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자연을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는 일이 어렵다면, 사람들은 상황이나 조건에 맞는 나무를 골라 심는 작은 수고 정도는 기꺼이 해야 한다. 전깃줄이 지나고 있다면 키가 작은 나무를 심고, 상가 간판을 가릴 것 같으면 꽃나무를 심어 맘대로 꽃피게 해주는 그만큼의 배려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나무는 나무의 본성대로 하늘 높이 쭉쭉 자라고, 사람은 사람들대로 죄책감 없이 가로수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해마다 가지가 잘려나가는 한쪽의 가로수를 보면서 느끼는 불공평함이라는 감정이 삶의 불공평함으로 확대되어 느껴지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나도 나무를 사랑한다. 여름 나무의 싱그러움을 사랑하듯이 겨울 길가에 몽당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 놓은 듯 기이한 모습을 하고 서 있는 메타쉐쿼이어도 사랑한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의 현인"이기에···,

아니, 사실은 그 몽당 빗자루를 닮은 가로수가 해마다 밀어 올리는 초록빛 치열함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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