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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성 - 한국의 단군 사묘

충주 숭령전 등 전국 46곳 단군 사묘
전국 4개 권역 2년간 답사한 내용 담아
쉬어가는 코너에 단군 에피소드 소개

  • 웹출고시간2019.10.10 10:44:14
  • 최종수정2019.10.10 10:44:14

저자 윤한주

"유서 깊은 사찰이나 향교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죠. 하지만 단군 사묘에 관해서는 안내서조차 찾기 힘듭니다. 선조들은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사묘를 건립한 것이죠. 우리 고장의 소중한 문화재인 단군 사묘를 찾아 선조의 뜻을 기렸으면 합니다."

윤한주 국학박사는 2017년 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단군 사묘을 답사해 책을 펴냈다.

사묘(祀廟)란 영정이나 위패 등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지역 단군 사묘에서 개천절마다 제례를 봉행하고 있지만 전체 개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 박사는 "학계에서 이강오 전북대 교수가 1980년까지 30여 사묘를 조사한 연구가 유일하다. 현장에 가보니 10개 정도는 사라진 상태였다. 안내판이 없거나 내용이 잘못된 경우도 많았다. 관련자를 인터뷰하고 새로운 자료를 통해 내용을 바로 잡았다. 1980년 이후에 설립한 단군 사묘도 모두 조사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단군사묘

윤한주 지음 / 덕주 / 336쪽

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단군 사묘는 모두 46곳에 건립됐다. 1909년부터 광복 이전까지 6곳이고 광복 이후부터 1999년까지 31곳이다. 2000년 이후에도 9곳이 더 건립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으로 살펴보면 대전·충청도 14곳, 광주·전라도 16곳, 대구·경상도 7곳, 강원도 2곳, 서울 4곳, 경기도 3곳이다.

대전광역시와 충청도에는 서산 와우리 단군전(1913), 충주 묵동마을 숭령전(1947), 논산 개태사 창운각(1947), 증평 단군전(1948), 부여 장정마을 천조궁(1949), 논산 대종교 청동시교당(1960), 서산 옥녀봉 단군전(1964), 대전 서구 단묘(1964), 청원 은적산 단군성전(1968), 괴산 흥천사 단군전(1992), 공주 태상전(1998), 공주 단군성전(2001), 금산 참나도원 대웅전(2006), 영동 선교 국조전(2006) 등이 자리잡고 있다.

단군 사묘가 전국적으로 세워진 배경은 1905년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 이후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국조 단군인식이 언론을 중심으로 국민들에게 확산해서다. 단군기원을 사용했고 단군 영정을 모집했다. 단군에 관한 책들이 연이어 출간됐다. 단군 사묘의 건립 또한 단군운동의 일환이었다.

김재형(金在衡, 1890~1966)은 일제가 단군을 부정하고 전국 각지에 신사를 차려놓고 참배를 강요하자 단군정신을 알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광복 후 동지들과 청원군 은적산에 단군전을 건립했다.

3·1 운동에 참여한 김기석(金箕錫, 1897~1978)은 광복 후 사재를 털어 증평에 단군전을 건립했다. 현재 증평군 향토유적 1호로 지정됐다.

충주 묵동마을에 살았던 원용선(元容璿, 1899~1968)은 일제의 눈을 피해 집 안에 국조 단군신위를 모시고 국운의 재기를 빌었다. 광복이 되자 1947년 3월 3일 어래산 중턱에 기단을 쌓고 천제단 표석과 조국통일기원비를 세워 천제를 올렸다.

윤 박사는 "일제는 단군을 구심으로 한민족이 결속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단군은 황당한 전설이라고 왜곡해서 가르쳤다. 단군 유적지를 파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이것이 민족말살정책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가들은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단군을 정신적 가치로 삼았다. 그러한 정신으로 단군 사묘를 건립했고 광복 이후로도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단군 사묘는 황해도 구월산에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삼성사가 있다. 평양 숭령전은 단군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의 세종이 세웠다. 묘향산 단군굴에도 광복 후에 사당을 건립한 것으로 확인했다.

주목할 점은 일본에도 단군 사묘가 있다는 점이다. 그 주역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왜군에 끌려간 조선의 도공(陶工)들이다. 이들은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에 단군을 모신 옥산궁(玉山宮)을 건립했다. 사당을 건립한 8월 15일마다 큰 축제를 벌여 화합과 번영을 다짐했다.

윤 박사는 "조선인들은 옥산궁에서 매년 제사를 지냈다. 조선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으며 떡과 과일을 서로 나누어 먹고 이웃에 음식을 싸서 보내는 등 고향의 예절을 잊지 않았다"라며 "옥산궁은 적지에 세운 사당이었지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의지처였다"고 말했다.

책은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총 46곳의 단군 사묘를 소개했다. 전라도민은 국조를 모시는 것은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단군사묘를 건립하자는 주장이 신문에 보도됐을 정도다. 경상도는 경상남도 문화재인 밀양 천진궁과 '칠곡군지' 1면을 차지하는 칠곡 국조전 등 단군 사묘에 관해서 지역민의 자부심이 많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단군 사묘가 박물관에 있다.

4개 권역이 마칠 때마다 쉬어가는 코너로 단군 에피소드를 실었다. 단군의 탄신절과 어천절의 근거를 문헌으로 제시했다. 임시정부에서 단군이 나라를 건국한 10월 3일을 건국기원절로 제정한 내력을 밝혔다.

/ 유소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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