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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충북도 바이오정책과장

 어릴 적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을 돌보는 일은 나에게 늘 하기 싫은 숙제였다. 그러다보니 한참 어린 동생은 호기심이 샘솟을 시기로 뭐든 새롭고 해보고 싶은 일이 천지였는데, 나는 늘 그 앞을 가로막으며 "하지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야 내 몸이 편하고 신경 쓸 일이 줄어들테니. 그날도 평소처럼 동생이 뭔가 작당을 꾸미는 눈치라 당당하게 그 앞에서 "너 그거 하면 혼난다. 하지마!"를 외치는 순간,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신 아버지께서 나를 안방으로 부르셨다. 그러시고는 하신 첫마디가 "이제부터 '하지마'는 우리집에서는 없는 말이다!"였다. 지금도 막내가 언니들 눈치 보느라 아무 것도 못하는데 더 커서 너희가 동생의 인생 곳곳을 매번 결정해줄 수 있냐는 꾸중도 함께였다. 그때 생각해보니 동생은 늘 망설이고 쉽게 포기하는 게 일상이었다. 저 녀석은 왜 저럴까 답답해했던 부분이 언니들의 무서운 '하지마' 한 마디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왜 나는 몰랐을까 하는 충격과 미안함에 사로잡힌 밤이었다.

 '하지마'라는 말로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그럴싸한 이유가 동반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상대방에게, 특히나 갈팡질팡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누군가의 '하지 마라'는 한 마디는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옆 친구 답안지가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그 순간과도 같을지 모를 일이다. 내가 쉽게 던진 그 한 마디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최근 업무 중 발생한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규정에 없으니, 또 한 번은 규정은 있지만 불명확하니 민원인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담당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원칙을 지키는 일일수도 있겠지만 민원인은 생존을 걱정할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원칙 자체가 맞는지, 또 바꿔볼 여지가 없는지부터 고민하는 일을 더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는 현재 '바이오의약' 분야에 대한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준비하고 있다. 특구는 지리적 범위를 정해 기업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기존의 규정을 완화하거나, 규정이 없어 사업에 제약을 받고 있는 기업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제도이다. 우리도가 신청하는 특구의 내용으로는 현재 개발 중으로 일부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이 입증된 자가유래 자연살해 세포치료제를 대체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임시허가와, 규정이 불명확한 식물체 기반 바이오의약품에 대해 해외 규정을 준용하여 임상시험을 할 수 있도록 특례를 부여해달라는 것이다. 특히 임시허가사항은 국내에서는 식약처 허가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는 약 10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반면 일본 등 해외에서는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 바로 시술 또는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국내 진출을 포기하고 해외로 떠나고, 국내 환자 역시 연간 4~5만 명이 약 1조 원 규모의 비용을 들여 아픈 몸을 이끌고 해외 원정시술을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함이다.

 대형 제약사를 제외하고는 기술력을 앞세워 투자를 받아 움직이는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인 이 분야에서 인류의 유병장수를 위해 혁신적인 치료제를 만들어보겠다는 연구자의 강한 의지는 규제에 막히고 자금에 막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규제기관 입장에서는 지금도 기준이 많이 완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다보니 연구를 포기하거나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해외로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는 국내 기술의 해외유출은 물론이고 해외 원정시술로 인한 국내 환자의 임상 데이터 유출까지 이어진다. 결국은 우리의 글로벌 기술경쟁력은 또다시 안드로메다행이다.

 언젠가 언니네 집에 놀러갔을 때 조카들을 위해 틀어놓은 동요가 생각난다. 제목이 '하지 말라 말하지마'.

 언니와 나의 '하지마'라는 말 때문에 우린 여전히 동생이 갈팡질팡하는 그 순간마다 답을 줘야 하는 벌을 받고 있다. 규정에 있는 단어 하나하나를 어떻게 봐야할 지까지 고민하는 기업들에게 지금 필요한건 손을 잡아줄 든든한 지원군이다. '하지 말라'고 하지 말고 "같이 해보자"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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