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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9.19 17:39:46
  • 최종수정2019.09.19 17:39:46

한정규

문학평론가

 1910년 8월 29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더 없는 치욕의 날이다. 그날로부터 36년이라는 짧지 않은 동안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정신적 탄압과 물질적 침탈을 당했다.

 민족은 있으나 국가가 없는 그래서 천부적 인권마저도 빼앗긴 체 소와 말처럼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을 했다. 그중 하나가 강제징용이요, 위안부 그리고 일본을 위한 전쟁터로 나간 병사였다.

 그 이외에도 그들이 식민통치를 한 36년 동안 식량 등 갈취해간 재물, 지하자원 등 수없이 많다.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일본 국토 절반을 한국에 넘겨주어도 많지 않다. 그런데 1960년대 청구권자금 겨우 미화 5억 달러(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로 완전 보상, 그 보상 덕택에 발전 오늘의 한국이 있다고 말한다는 것은 한심한 발상이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에 일본이 있기까지에는 경제와 문화 측면에서 한국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 사실 역사가 증명한다.

 경제면에선 식민지 통치 기간 갈취해 간 자원 말고도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일본 청자를 만들어 17·18세기 유럽으로 수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특히 영국의 황실이 일본에서 수입한 청자를 생활자기로 사용하자 그것이 귀족의 품격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됐다. 결국 일본은 우리나라 도공들 도자기 기술로 청자를 만들어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로 수출 경제부흥의 발판으로 삼았다. 고려청자로 일본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도공들의 사회적 신분이 낮았다. 그래서 도공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에 회의를 갖고 살았다. 그때 마침 일본이 도공을 데려가기 위해 전남 강진 대구 당전리 가마터로 잠입했다. 당전리 도공들을 일본으로 데려가 사회적 신분을 상위계층으로 우대했다. 그 결과 일본이 고려청자 기술을 발전 경제적 현대화를 이뤘다. 그런 일련의 것들로 보아 일본은 우리를 소원(疏遠)하게 해선 안 된다. 특히 백제와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서기 1815년 일본 왕실이 편찬한 신찬성씨록에 의하면 비타쓰왕은 백제왕족이며 게이타이왕은 백제 무령왕의 친동생이다. 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제 스이코 여왕이 백제 성왕의 딸이었다. 또 아키히토 일황 50대 간무천황의 생모 역시 무령왕 후손이다.

 오사카지역이 백제주라 기록돼 있으며 백제시대 전라남도 영암 태생 왕인박사가 일본 응신천황의 태자 스승으로 활약했으며 일본에 백제문화를 전수 일본문화사상의 성인으로 아스카문화를 창시했다.

 그런 일련의 기록들로 보아 일본이 한때는 백제의 문화 식민지로 정신적 지배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외에 대마도만 해도 한 때는 신라가 지배했던 사실이 있다.

 그런 일본 그들이 요즘 보인 행위, 진실을 왜곡 그것도 부족, 경제적 우위를 내세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등에 업고 우리를 또다시 위협하고 있다.

 독도만 해도 그렇다. 역사상 단 하루도 일본 영토로 지배한 사실이 없다. 그런 독도를 자기들 영토인데 우리나라가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등 억지를 그것도 모자라 지난 7월 23일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우리 영공을 침범하자 우리 공군이 포격 방어를 했다. 그 사실을 두고 일본이 자기 나라 독도 영공에서 우리 공군이 러시아 군용기에 포격을 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고 우리를 협박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25일 우리 해군이 독도방어훈련을 하자 일본이 주일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강하게 반발 자기영토 독도에서 훈련을 중단하라고 했다. 일본 국회 한중 의원이 전쟁을 해서라도 독도를 빼앗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일본, 특히 아베를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지금의 일본이 있기까지는 고려청자 도공들과 식민지 시절 침탈과 착취가 원동력이 됐음을 잊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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