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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외성(外城) 추적 단서 찾아

1910년대 유리원판 사진 장소…삼원초 버스승강장

  • 웹출고시간2019.08.28 16:53:21
  • 최종수정2019.08.28 16:53:21

조선총독부의 제5차 사료조사 과정에서 촬영된 유리원판 사진.(가운데 하얀 길은 당시에 탄금대로 난 신작로다. 절개 부분은 현재의 삼원초교 버스승강장에 해당되며, 사진에 담긴 주변 논밭이 지적도에 그대로 구현돼 있다)

ⓒ 예성문화연구회
[충북일보 윤호노기자]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유리원판 사진 중에 '충주읍외(忠州邑外) 토성벽(土城璧)'이라 이름붙인 사진 한장이 있다.

그동안 사진을 놓고 토성의 존재를 실증해 주는 중요한 의미가 부여됐는데 산의 능선을 두고 위치와 지점을 추정만 할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사)예성문화연구회는 충주시내 지적도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해당 사진의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1914년 11월 충주시내 17개 리동(里洞)에 대한 지적측량 작업이 시작됐다.

470여매의 지적원도가 생성됐다.

그 중 사진에 해당되는 지점은 용산리(龍山里) 원도 25매 중 19호 도면과 봉방리(鳳方里) 원도 30매 중 3호 도면을 합쳤을 때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1914년 지적원도에서 확인되는 충주외성의 흔적.(주황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토성벽으로 빗금친 곳이 사진에 나타난 토성이다. 위의 길은 탄금대로 향하는 신작로로 삼원초교 옆에 해당된다.)

ⓒ 예성문화연구회
도면에서 보이는 토성벽은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앞쪽은 임야로 지목이 표시됐고, 뒤쪽은 밭으로 돼 있다.

해당 지점은 지금의 삼원초등학교 버스승강장이 있는 곳이다. 앞의 임야였던 토성벽은 현재 고용노동부 충주고용센터 뒤편의 골목에 해당된다.

이 골목은 소위 성터지기라 불리는 농어촌공사 충주제천단양지사로 이어진다. 뒤쪽의 토성벽은 삼원초교를 가로질러 충주천에 맞닿는다.

현재 확인된 충주외성(토성)은 사직산 서남측의 일부 구간이 2009년도에 부분 시굴됐고, 2012~2016년까지 진행된 호암택지지구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토성이 발굴 보존·조치됐다.

충주외성은 봉현성(鳳峴城)으로도 불렸다.

두 곳의 유적을 제외한 구간에 대해서는 추정을 통해 개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도시화에 따른 급격한 공간변화로 인해 흔적을 찾기 어려운 구간이 대부분이다.

이에 예성문화연구회는 충주시와 협의를 통해 추가 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길경택 회장은 "충주외성의 존재에 대해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지적도, 지지류, 양안, 지형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충주의 각종 유적에 대한 폭넓은 접근 가능성을 여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충주 / 윤호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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