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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 밤새 울었다.

이 세상 모든 시 가운데서 이처럼 끔찍하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시조 보다 짧은 39자의 이 5행시가 터뜨리는 폭탄과도 같은 엄청난 공포와 몸서리 쳐지는 충격은 달리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저주 받은 병, 이른바 천형天刑의 죄라 일컫는 문둥병에 걸렸다 할지라도 또 그 병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달 밝은 밤 보리밭에 숨어서 철없는 어린애를 납치 해다가 참아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짓, 간을 빼먹고 스스로 가슴치고 한탄하며 밤새워 울음 터뜨리는 문둥이의 탄식, 이보다 처연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서정주의 「문둥이」의 마지막 구절 「꽃처럼 붉은 울음 밤새 울었다.」는 이 시의 절창이었다.

그와 크게 대비되는 소박한 예도 있다. 아주 평범하고 성실한 이름 없는 젊은 농부가 느닷없이 문둥병에 걸려 도저히 고향에서 살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울며 매달리는 가족을 뿌리치고 집을 떠났다. 그 후 본인은 두말 할 것도 없고 모든 가족에게 피눈물 나는 세월이었다. 굶주림, 이웃들로부터의 참을 수 없는 냉대, 멸시, 따돌림 심지어는 시가에서 조차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집안이 망했다고 질타하여 젊은 아낙은 어린 자식들을 부등켜안고 그야말로 꽃처럼 붉은 울음 밤새 울었다.

하늘이여, 해 뜨면 종일 밭에 나가 땀 흘리고 일하는 숙맥같이 사는 저희가 하늘에 무슨 죄가 그리 많아 온몸으로 짊어질 수조차 없는 가혹한 형벌을 주십니까. 철없는 저 어린것들 인생을 모조리 망가뜨리십니까.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시고 저들을 풀어 주소서 하고 섧디섧게 울다가 까무라치고 또 울고를 몇 번이나 되풀이 했다. 그런 어느 이른 새벽 비틀대며 뒷간에 가기 위해 신발을 신으려고 뜨락에 나갔다가 툭 떨어진 낡은 주머니를 발견했다. 무심코 열어보고 화닥닥 놀랐다. 돈이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번개처럼 머리에 스친 것은 남편이 다녀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누군가 먼 타관에 갔다가 얼굴을 가린 사람이 가장 번잡한 시내 한복판에서 애간장이 찢어지는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목격했다한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 설 때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바구니에 돈을 산더미만큼 쌓아주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노래라면 가수 빰 치던 애 아빠 목소리였다고 그는 몇 번을 강조했다. 아낙은 질펀하게 울었다. 남편의 18번 노래 부엉새는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하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통곡이 되었다.

농경시대 나병은 단순한 피부병에 불과하다는 현대의학 지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때 그것은 날벼락 같은 인생 최악의 재앙이었다. 그런 절망 속이니까 더욱 악성 루머가 널리 퍼져 이었다. 사람의 간을 빼먹으면 병이 낫는다. 문둥이 곁에만 가도 병이 금방 옮는 무서운 병이다는.

몇 달에 한 번씩 그 아낙의 집 대문 안에, 마당에, 뜨락위에 돈 보따리가 던져져 있었다. 아낙은 수도 없이 대문 안에서 몰래 지켰다가 남편을 만나려고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어느 눈이 무던히 내리던 날 아낙은 문고리를 잡고 밖을 지키다가 보따리가 툭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잽싸게 뛰어 나갔으나 남편은 더 빠른 발걸음으로 동구 밖에 까지 뛰어가며 멀리 사라지는 것이었다. 여보오...딱 한번..만 만나보고 싶어요. 하고 쓰러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이름 없는 지아비가 최악의 불행 속에서도 혼신의 노력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이 진실로 우리로 하여금 꽃처럼 붉은 울음 터지게 하지 않는가. 그런 삶도 있는데 자기 배 더 채우려고 남을 짓밟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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